덕수궁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입니다. 경운궁이란 경사스러운 기운이 모여 있는 궁궐이라는 뜻입니다. 이 궁은 원래 조선시대 세조임금의 손자이고, 추존왕인 덕종의 아들이며, 성종 임금의 형입니다. 추존왕 덕종이 죽자 세자빈 한씨도 출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라에서 월산대군과 자을산군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정치적인 계산에 의해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과 월산대군이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둘째아들인 자을산군이 왕위에 오르는데 그가 바로 성종입니다.

 그러다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 임금은 난을 피해 의주까지 몽진을 합니다. 우여곡절끝에 전쟁이 끝나고 선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한양의 경복궁은 이미 폐허가 되어 왕이 머물곳을 찾다가 월산대군의 집을 궁궐도 사용하게 됩니다. 왕이 머물기에는 협소한 편이어서 주변에 있는 관리들의 집을 궁궐로 편입시킵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도 경운궁에서 나라를 다스립니다. 그러다가 나라가 안정되고 재정이 좋아지자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그런데 광해군은 인조 반정에 의해 쫓겨납니다. 

  인조는 광해군처럼 창덕궁에서 정치를 합니다. 그리고 경운궁에 있던 가옥을 주인에게 돌려주고, 선조가 정치를 보던 석어당과 즉조당만 남겨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경운궁은 궁궐로서의 수명을 다합니다. 하지만 1897년 다시 궁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1895년 야만스러운 일본 깡패들이 명성황후를 죽이고 시신을 훼손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고종은 급히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아관파천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겼던 고종은 다시 새로운 거처로 돌아오는데 그곳이 바로 경운궁입니다.

  그리고 1897년 10월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이렇게 경운궁은 조선의 으뜸 궁궐도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다 쓰러져가는 나라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애를 쓰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습니다. 1905년 외교권을 박탈하는 을사늑약을 일본과 강제로 맺게 되는데 그 암울했던 역사적 사건이 경운궁 중명전에서 있었습니다. 을사늑약은 일본의 강제에 의한 것이라고 헤이그 특사를 파견하지만 오히려 황제의 자리에서 강제로 퇴위당하는 수모를 받습니다. 이젠 황제에서 퇴위되었으니 경운궁은 더이상 고종을 위한 궁궐이 아니었습니다. 고종의 아들 순종은 경운궁에서 머물지 않고 창덕궁으로 거처를 다시 옮겼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고종이 계신 경운궁을 <덕을 누리면서 오래 사십시오.>라는 의미로 덕수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제부터는 경운궁이 아니라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한일 강제 병탄이 있은 후 일본은 덕수궁을 그대로 두지 않았습니다. 일제 유원지인 중앙공원을 만들고, 일본 관리들이 묵는 여관으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궁궐터는 공원으로, 여관으로, 도로로, 학교로, 미술관으로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더욱 위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한국전쟁에서 폭격을 맞을 뻔한 위기가 있었습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은 김영환 장군이 지켜냈지만 덕수궁은 주일공사 김용주의 역할이 컸습니다. 한국전쟁에서 전세를 역전한 인천상륙작전 시 맥아더는 서울 폭격 장소로 덕수궁을 지목합니다. 미군 해병대에서 적의 동태를 파악했는데 인민군들이 임시기지로 삼은 덕수궁에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래서 미군 지휘부는 덕수궁을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때 맥아더에게 다급한 면회 신청을 하고 간곡하게 폭격 철회를 요청한 사람이 바로 주일대사 김용주입니다.

  또 덕수궁을 지켜낸 미국인 포병부대 제임스 해밀턴 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덕수궁을 폭격하는 것은 양심상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한 나라의 문화 유산을 단 몇 초만에 모두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고 지휘부에게 명령 재고를 요청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지휘부에서는 "인민군이 모두 빠져 나갈 때까지 기다려라. 덕수궁 폭격은 취소한다."

 이렇게 한국전쟁 시 없어질 뻔한 덕수궁을 지킨 두 사람, 김용주와 제임스 해밀턴 딜

 제임스 해밀턴 딜은 나중에 한국전쟁을 떠올리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오늘날 덕수궁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것이 참 흐뭇하고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날 내가 내린 판단과 행동은 내가 살아 있는 한 결코 잊을 수 없다."

 비록 전쟁 중이었지만 한 나라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들이 덕수궁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고마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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