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 네포무크 신부와 왕비의 고해성사>

지난 번 카렐교(카를교)에 대해 포스팅했는데요.
얀 네포무크가 왕비로부터 어떤 고해 성사를 들었기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주었을까요?
체코 프라하 성 앞 블타바 강위에 놓인 카를교...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인데요. 관광객들이 카를교에 와서 꼭 하고 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원을 비는 일입니다. 바로 얀 네포무크의 조각상앞에서 소원을 빕니다. 그래서 얀 네포무크의 조각상 앞 동판은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이 동판은 얀 네포무크가 카를교 다리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새긴 것인데요. 얀 네포무크가 떨어지기 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마지막 소원을 이 다리에 바치나니 이 다리에 선 자는 모두 소원을 이룰 것이다."

때는 1393년. 얀 네포무크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보헤미아 국왕인 벤첸슬라우스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얀 네포무크 신부, 말하라! 그날 왕비가 신부에게 무슨 고해 성사를 했는지 당장 말하라."
"전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해성사 내용은 오직 하느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왕비의 고해성사를 말하지 않은 얀 네포무크.

그렇다면 고해성사의 내용은 무엇일까?

왕비는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늘 외로운 왕비.
"외로워 외로워 바람처럼 외로워. 서러워 서러워 ~~~"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전쟁터로 나간 사이 왕비는 루드비크 장군과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왕비는 죄책감으로 이런 내용을 얀 네포무크 신부에게 고해성사하고 죄를 사면받고자 합니다.
얀 네포무크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끝까지 비밀로 한다고 왕비에게 약속을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누설하는 것을 엄히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왕은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시녀가 찾아와 왕비와 장군과의 염문을 발설합니다.
하필 그 장면을 시녀가 본 것입니다.
"뭐라! 왕비가 그런 일을...그 장군이 누구냐?"
"전하. 뒷모습만 봐서 어떤 장군인지 잘 모릅니다."
"이런 요망한 것. 만약 거짓이라면 넌 목숨을 잃을 줄 알아라."

왕비의 비밀을 알게 된 왕은 크게 분노하며 왕비를 다그치지만 왕비는 전혀 그런일이 없다고 해야 되겠지요.
왕비는 안그랬다고 하고 그러니 시녀를 고문하고 처형합니다.
왕은 그래도 왕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왕비가 고해성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얀 네포무크 신부를 모진 고문을 하며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다그칩니다.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지 않는 얀 네포무크...
이성을 잃은 왕은 이제 얀 네포무크를 묶어 카를교 아래 블타바 강으로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얀 네포무크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버린 순교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수호자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얀 네포무크가 처형당한 카를교 난간에 십자가 표식을 만들었고 동상을 카를교에 세웠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얀 네포무크 동상앞에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아마 얀 네포무크가 다리에서 떨어지기 전에 한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이 다리에 가면 얀 네포무크의 동상 앞에서 동판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빌고 왔는데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카렐교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약 1000년 넘게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도시로 모차르트가 매우 사랑했던 도시라고 합니다. 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지요.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중앙의 큰 나라였습니다이렇게 큰 나라의 수도를 카렐 4세가 프라하로 정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프라하의 시민들은 아직도 카렐 4세 시대의 프라하를 프라하 역사의 가장 황금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의 도시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카렐교

블타바 강 위로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인 카렐교를 소개합니다.

 


카렐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미터넓이 약 10m 정도 되는 중세 시대 석조 다리입니다옛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렐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교라고 부릅니다. 1357년 카렐 4세가 만든 다리인데 1402년 바츨라프 4세 때 완공됩니다.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다리이니 소매치기 조심해야지요저는 구 시가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던 관계로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에 이곳을 3번 갔네요갈때마다 다리 위에는 거리의 악사예술가동냥하시는 분관광객들 등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더라구요. 한국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아마 도시가 너무 예쁘고 중세적인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또 드라마에서도 소개가 많이 되어 더 많이 찾는가 봅니다.

 


다리 위에는 조각상이 좌우에 각각 15개씩 모두 30개가 있습니다여러 개의 조각상 중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얀 네포묵(얀 네포무크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입니다전설에 의하면 얀 네포묵은 바츨라프 4세의 왕비의 고해 성사를 들었다고 합니다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비가 어떤 내용의 고해 성사를 했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하지만 신앙심 깊은 얀 네포묵은 그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그러자 왕은 온갖 고문과 협박을 합니다그러다가 왕이 성직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얀 네포묵을 묶어 블타바 강에 던졌습니다죽음으로서 종교적인 신념을 지킨 얀 네포묵.

동판위에 새겨진 강위로 떨어지는 얀 네포묵별을 함께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과 행운을 빌며 만졌는지 그 부분만 맨질맨질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구시가지 앞에 이르는 교탑앞에 이릅니다이곳은 30년 전쟁에서 스웨덴 군대를 막아냈던 격전지라고 합니다이 곳에서 왼쪽을 보면 동상이 보입니다바로 카렐 4세의 동상입니다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재위기간동안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도시로 탈바꿈 시킨 인물이지요이곳에서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예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탑 주위에는 제복을 입고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람들(흑인들이 많지요)이 있던데 이 사람들은 유람선 탑승을 안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탑 바로 밑에 유람선이 있으니 유람선도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카렐교 교탑>


<카렐 4세 동상>


<카렐교 교탑과 카렐 4세 동상을 한꺼번에 찰칵>


<카렐 4세 동상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프라하 성, 블타바 강, 카렐교 모두 담을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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