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생존의 기로에서 

전 국가대표이자 프로축구선수였던 장학영이 

이한샘 선수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했습니다.

아산 무궁화 축구단 이한샘 선수의 거절 및 구단에 제보하여 

검찰이 장학영을 구속한 상태라고 합니다.


현재 아산무궁화축구단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많은 축구인들이 해체위기에 있는 아산구단을 살리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경찰청의 일방적인 선수 수급 중단에 대해 김병지 등 

전직 프로선수와 아산서포터즈들이 기자회견도 하였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였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간다면 내년에는 겨우 14명의 선수만 남게 됩니다.

14명의 선수로 리그를 운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일방적인 선수 수급 중단이 아닌 경찰 선수단의 유지로 어린 선수들이

병역을 운동을 하면서 병역을 해결하고, 

함께 기량도 상승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전 배구팀이 있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체육관을 찾아 응원했습니까?

그만큼 아산은 젊은 사람들이 많아 스포츠에도 매우 관심이 높은 지역입니다. 

경찰청의 대승적인 정책으로 경찰 축구단을 계속 유지해 주기를 간곡히 원합니다.

경찰청에서 쌓은 경기 감각을 바탕으로 세계 무대를 노크하여 인정받고

대선수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국력향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안게임의 금메달, 벤투 감독의 부임으로 연이은 승전으로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축구의 좋은 기류가 있는데 승부조작 제의를 하여

그동안 인기가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그런데 해체위기의 팀 아산팀에 승부조작을 제의하여

더욱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만약 이한샘 선수가 그 제의를 받아들여 승부조작에 협조했다면

정말 무궁화 축구단은 그날로 해체하라고 여론이 빗발쳤을 것입니다.


예전 배구도 상무팀에 있던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시도하였습니다.

제대하고 나서도 소속팀에 복귀하여 다른 선수들까지 끌어들여

승부조작한 것이 발각이 되었습니다. 

드래프트 1순위였던 선수도 영영 코트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상무나 경찰청 선수에게 마수의 손길이 뻗치는 이유는

아마 프로팀에서는 많은 연봉을 받다가 군경팀에서는

몇푼 받지 못하니 승부조작 브로커들이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이한샘선수처럼 절대 응해서는 안됩니다.

선수 개인은 매장되고,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사랑했던

축구의 인기가 추락할 수 있습니다.

이동국

생년월일 - 1979년 4월 29일 (40세)

키 - 187cm

몸무게 - 85kg

가족 - 아내, 딸 4명, 아들 시안 1명

K리그 기록: 498경기 출전 214골 뽑아냄

소속팀 - 포항입단, 독일 브레멘, 상무, 잉글랜드 미들즈브러, 성남, 전북(현재)


이동국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 것 같다.

올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12골을 기록하고 있고,

10년 연속으로 두 자릿 수의 골을 기록하고 있다.

98년에 포항에 데뷔했으니 근 20여년간 그라운드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다.

그것도 나이 40에 득점도 아주 잘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아이들과 재미있는 모습을 연출하여

팬들의 사랑을 더욱 받고 있고, 특히 시안이의 재롱에 시청자들은 너무 귀엽다고 한다.

한때 러시아 월드컵 공격수로 발탁하자고 했을 정도로

나이를 떠나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이 시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


일본 미우라 선수가 현재 51살로 2부리그 공격수로 뛰고 있는데,

이동국은 K리그에서 50살까지 아니 미우라보다 더 오래 현역으로 뛰어

최고령 출전 기록을 세워 보자.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와의 경기할 때 

교체하자마자 중거리포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이라니 세월 참 빠르다.

체력 관리를 잘 하고 있고, 늘 성실한 자세로 최강희 감독을 흐뭇하게 하고 있는데

스포츠 기사에 이동국이 나올 때마다 조금 아쉬운 감도 없지 않다.

빨리 이동국 후계자가 나타나야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다.

황의조가 가능성 있지 않을까?

 제2차 계대전에서 일본은 욱일기, 독일은 하켄크로이츠를 상징물로 이용했습니다.

우선 독일의 깃발을 보면 불교의 만자를 약간 비뚤어 놓은 것처럼 그렸습니다.

이것이 하켄크로이츠인데 이것을 나치의 당기로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인사법을 오른손을 140도 정도 들어 올리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즉 나치 사상의 정치적 상징물은 깃발(하켄크로이츠)과 인사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전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하켄크로이츠는 더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독일 정부에서는 이 깃발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나, 일부 극우세력들만 가끔 사용할 뿐입니다.

독일과 함께 2차 대전에 합류했던 일본도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사용했습니다.

한국과 축구경기 할 때 욱일기를 흔들며 응원하여 우리나라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는데,

일본은 뭐가 문제냐 하며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분할 뿐입니다.

이렇게 욱일기는 전범기로 생각하며 식민통치를 받았던 우리나라나 침략을 당했던

동남아, 중국 등은 욱일기 자체를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아직까지도 일본 자위대 깃발로 또는 응원도구로 사용합니다.

이게 독일과 일본의 차이점입니다.

독일은 지난 날 유태인에게 만행을 저질렀던 일, 

전쟁을 일으켜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과거사를 반성하며 사과하는 반면

일본은 뭐가 자랑스러운지 욱일기를 아직도 사용하고, 

침략 전쟁을 일으킨 과거사에 대해 반성은 커녕 당당하기만 합니다.

 욱일기를 살펴보면 동그란 원만 그려져 있던 일본 국기에 햇살이 퍼져 나가는 모양을 그린 것입니다.

이게 침략과 수탈을 의미하며, 일본 제국주의 군부의 상징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 깃발만 보면 아직도 속이 메스꺼운데,

그 깃발을 당당히 내걸로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여하려고 합니다.

이에 우리나라 대다수 국민들은 '도대체 일본은 이런 식으로 한국을 무시하는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당연한 부대깃발을 게양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그 깃발이 어떤 깃발인지 생각은 해 봤는지, 

그 깃발이 우리 나라 국민들에게 어떤 고통을 주었는지 생각을 해봤는지 말입니다.

그럴 것이라면 아예 국제 관함식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독일 함대가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초청받았다면 하켄크로이츠 깃발을 걸고 왔을까? 

아니면 독일 국기를 걸고 왔을까?

당연히 독일이라면 독일 국기를 달고 왔을 것입니다.

일본은 당연히 욱일기가 아닌 일장기를 걸고 와야 할 것입니다.

(아니 생각같아서는 일장기 자체도 달고 오지 않았으면 좋겠지만요.)

아! 이글을 쓰면서도 속에서 괜히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아산 무궁화축구단 해체되는가?

아산에 프로배구팀 우리카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전임 복기왕 시장은 배구장을 찾아 아산 배구 열기에 힘을 쏟았지요. 

저 또한 배구 경기를 구경하며 겨울 스포츠를 만끽하였습니다.

천안에서는 현대캐피탈 응원도 하며 지역에 스포츠팀이 있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웠습니다.

한 20년전에는 천안에 일화팀이 있어 축구 경기도 관람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였지요.

그런데 아산 우리카드 배구팀은 서울로 연고지를 벌써 이전을 했고, 아산 무궁화 축구단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가까운 곳에 축구 팀이 있어 경기장을 찾아 축구경기 보는 것이 즐거운 낙이었는데,

일방적으로 선수를 선발할 수 없다고 하는 경찰청의 통보에 어안이 벙벙합니다.

 무궁화 축구단 주세종 선수의 긴 패스를 받아 손흥민 선수가 독일전에서 골을 넣었을 때, 

아시안 게임에서 황인범 선수의 몸을 사리지 않는 경기력에 감동이 있었는데, 

이제 축구단이 없어질 계획이라고 하니 너무 아쉬울 따름입니다.

경기장을 찾아 관람해보면 아산 무궁화 팀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데,

 선수 선발을 하지 않는다고 하니 선수들도 많이 풀이 죽었을 것 같습니다.

 경찰대학교와 경찰학교가 아산시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아산시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36억원(2년동안) 정도를 투입했는데, 아산시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고 하니, 아산시에서도 멘붕일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경찰청에서 선수선발을 계속하여 무궁화 축구단을 존속시키는 방법입니다.

 2. 아산시청과 아산시민들이 협의하여 아산시민구단으로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3. 아산에 연고지를 두고 기업이 인수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성이나 현대가 이미 축구단을 운영하고 있어 애로점이 있네요.


아산 무궁화축구단은 아산시민들의 희망이 되고 가족들과 즐거운 추억이 있던 곳입니다. 

예전 아산 우리카드 경기를 구경하며 즐거웠던 생각도 나네요.

경찰청 무궁화축구단의 원만한 해결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라고 불리우는 손흥민

그를 키워낸 손부삼천지교라 불리우는 아버지 손웅정

아시안게임 축구 우승으로 손흥민 선수의 몸값은 치솟고 있습니다.

2013년 레버쿠젠 이적료 130억원

2015년 토트넘 이적료 397억원

2018년 1194억원

병역면제 후 몸값은 자그마치 1338억원으로 세계 25위 안에 드는 몸값입니다.


손흥민을 이렇게 훌륭한 선수로 거듭나게 한 장본인은 바로 아버지 손웅정.

손웅정은 현재 SON축구아카데미 총감독입니다. 

현대와 일화 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으나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28살 때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하였습니다. 아쉽게 은퇴한 그는 손흥민이라는 아들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어했고, 자신처럼 기술없는 선수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고향 춘천으로 낙향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매일 양발 슈팅 1000개, 2단 줄넘기 수 천번을 뛰게 하였습니다. 

손흥민이 16살 될 때까지 정식 경기는 내보내니 않고, 오로지 재야 무협 고수처럼 매일 6시간씩 기본기 훈련만 가르쳤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유소년팀에 입단했을 때 아버지는 훈련장 옆에 숙소를 마련하고 새벽마다 아들과 똑같이 훈련을 실시하였습니다. 30살이나 많은 아버지도 똑같이 훈련을 하니 손흥민 선수도 꾀를 부릴 수 없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손웅정 씨의 독특한 훈련방법을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토트넘 커뮤니티에서는 손웅정씨를 토트넘 유소년팀 지도자로 모실 것을 건의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유난을 떨어도 아들이 하기 싫어하고 꾀를 부리면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가르침을 군소리 없이 잘 따라했던 아들이었기에 오늘날 세계적인 축구선수로 우뚝 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국가대표 평가전인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유럽에서 비행기 타고 왔는데 고작 몇 분만 경기에 뛰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손웅정은 인터뷰에서 "아들이 소속팀에 전념할 수 있게 대표팀 차출을 자제해 달라"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와전되어 손흥민 선수가 대표팀 차출을 거부한다고 인터넷에서 떠들어서 저도 그때 버릇없는 선수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이 아니고 또 오해해서 미안한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국에서 나오기 힘든 축구 선수를 만든 손웅정. 참 대단한 분입니다. SON축구 아카데미에서 제2, 제3의 손흥민 선수가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

<축구 전쟁>

축구 때문에 전쟁한 두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1969년 7월 14일 발발)

1970년에 개최되는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하기 위해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최종전이 열렸다.

월드컵 처녀 출전을 위해 총력전으로 맞붙은 두 나라는

원래부터 영토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라이벌 의식이 강한 두 나라가 본선 진출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숙명의 대결을 펼친다.


1차전-온두라스 승리

개최지: 온두라스

승리국: 온두라스가 1대0으로 승리

경과: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잘 뛰어다니지 못함.

 그 이유는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 극성팬들이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묵고있는 호텔에 찾아와

밤새도록 시끄럽게 타악기를 연주하는 등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잠을 잘 수 없었음. 

 다음날 엘살바도르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음

사람들은 온두라스의 매너없는 행동을 강하게 비난함.


2차전-엘살바도르 승리

개최지: 엘살바도르

승리국: 엘살바도르가 3대0으로 승리

경과: 경기 전날 밤 엘살바도르 극성팬들이 온두라스 선수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찾아와

쥐를 던지거나 시끄럽게 하여 온두라스 선수들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함. 

온두라스가 중계방송하면서 계속 엘살바도르를 비난하자 

엘살바도르 관중들이 온두라스 관중들에게 몰려가

폭력을 행사하여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함.

당일 경기: 온두라스 선수들은 제대로 뛰어다니지 못하고 3:0으로 패배함

-경기가 끝난 후 온두라스에 거주하고 있는 엘살바도르인들이 온두라스인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당함

6월 23일 두 나라는 단교를 선언함


3차전-연장 혈투 끝 엘살바도르 승리

개최지: 멕시코

승리국: 2:2 무승부 후 연장전에서 엘살바도르가 1대0으로 승리

당일 경기:

 - 멕시코 경찰들이 엄청 많이 투입되어 경기장 질서유지 시킴

 -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격투기를 방불케 하는 혈투를 벌임.

 - 연장전에서 엘살바도르 승리


축구전쟁 발발

-축구 경기가 끝난 후 양국 간 국민 감정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

-온두라스인들의 엘살바도르인들에 대한 무차별 테러 심화. 수십명 목숨 잃음

-분노한 엘살바도르 정부는 7월 14일 전쟁을 선포하여 개시함

-4일동안 벌어진 전쟁이라 100시간 전쟁이라고도 함

-사상자: 17000여만명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