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최제우가 창시한 우리나라 종교인 동학의 교세가 날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늘과 같다는 인내천사상이 농민들 사이에 퍼져나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외세의 경제적인 침투가 심화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쌀 수탈로 인해 쌀값은 상승되고 게다가 흉년이 들다보니 민심은 흉흉해져갔습니다. 살기가 점점 힘들다보니 농민들은 동학에 더욱 의지해갔습니다. 게다가 탐관오리들이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어 백성들의 불만은 극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고부군수 조병갑이 세금을 뜯어가고 횡포를 부려가며 백성들 가슴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농민들이 전봉준, 김개남을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키게 됩니다. 전봉준의 별명은 녹두장군인데 키가 160도 안되는 작은 키지만 단단하고 야무졌다고 합니다. 녹두라는 곡물이 작고 단단하기 때문에 전봉준과 비슷하다고 하여 녹두장군이라 불리어진 것 같습니다. 전라도 고부에서 뭔 일이 일어났다고 보고 받은 중앙에서 조사관을 파견하여 조사해본 결과 조병갑의 죄를 묻고, 또 농민들도 함께 죄를 물으려 하였습니다. 이에 농민들은 양반놈들은 다 그렇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봉기를 합니다. 보국안민과 제폭구민 즉 나라와 백성을 위하고 폭압적인 탐관오리로 부터 백성들을 구하자는 구호 아래 관군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전라도에서 관군과 전투를 하여 관군을 격퇴하고 전주성까지 장악하게 됩니다. 국내 정치를 개혁하려는 경향이었던 1차 봉기는 양반세력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반봉건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1차 봉기 때 사람들을 모을 때 사용한 것이 사발통문인 주모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사람들을 모을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습니다. 사발모양의 원을 중심으로 참가자의 명단을 빙 둘러가면서 적은 통문을 사발통문이라고 합니다.

  전주를 장악한 농민들에 대해 정부는 청에 원군을 요청합니다. 그러자 텐진조약을 근거로 일본군도 우리나라에 파견됩니다. 동학 농민들이 원한 것은 반봉건인데 외세까지 들어와 외세의 개입을 막기 위해 정부와 전주화약을 체결합니다. 전주에서 화해의 약속을 한 것이 전주화약입니다. 동학 농민군은 이때 폐정개혁안을 제시합니다. 그 내용으로는 동학교도는 정부와 원한을 씻고 서로 협력한다. 불량한 유림과 양반 무리를 징벌한다. 노비 문서를 소각한다. 천인들과 백정들의 차별을 없앤다. 젊은 과부의 재혼을 허용한다. 왜와 통하는 자는 엄중히 징벌한다. 토지는 균등히 나누어 경작한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학 농민들은 집강소를 설치하고 농민들이 폐정 개혁안을 추진합니다. 정부도 교정청을 만들어 함께 노력한다고 하였습니다.

 전주화약에서 외세를 몰아내고자 하였지만 일본이 경복궁을 침범하여 점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에 농민들은 매우 화가 나게 됩니다. 또 청일 전쟁까지 발발하여 우리 땅에서 전쟁이 벌어져 우리 땅을 아수라장이 되고 일본이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일본을 타도하기 위해 동학 농민군은 다시 봉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관군과 일본군에 의해 2차 봉기는 공주 우금치에서 진압이 됩니다. 녹두장군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체포되어 처형이 됩니다. 1차 봉기는 양반들에 반감으로 일어났지만, 2차 봉기는 일본에 대항하는 반외세적인 경향이 강했습니다. 1894년의 동학농민운동은 민중들로부터 시작된 아래로부터의 개혁운동이었습니다. 동학농민운동의 의의는 반봉건, 반외세운동의 성격이었으며 정치와 사회 개혁을 추구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고자 한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 실패로 끝났지만 1894년 갑오개혁에 영향을 주었으며, 청일전쟁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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