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인들이 함께 건국한 나라입니다. 대조영이 나라의 근거지는 동모산, 초기 이름은 진, 698년에 건국하였다가 발해로 국호를 바꿉니다. 이때 연호는 천통이었습니다. 지배층은 고구려인, 피지배층은 말갈인이었습니다. 

 말갈인은 고구려 때부터 숙신, 읍루, 물길, 말갈, 여진, 만주족으로 불리웠는데 우리나라와 참 밀접한 민족입니다.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여 만주를 우리 민족이 계속 지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자신들의 소수민족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고구려 계승 근거는 뚜렷합니다.

 우선 일본에 외교문서를 보낼 때 <고려국왕-고구려국왕>이라고 칭했습니다. 발해 지배층 대부분이 고씨와 대씨였으며, 고구려 문화와 유사한 유물과 유적들이 있습니다. 또 발해 멸망 후에는 왕자 대광현 등이 중국에 귀화하지 않고 고려로 넘어왔습니다. 왕건은 대광현을 후한 대접을 하며 맞이하였지요. 이런 여러 가지 근거로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대왕 무왕과 3대왕 문왕은 일본에 국서를 보내고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무왕은 당과 대립하였으나 문왕은 당과 친선관계를 유지하며 당문화를 수입하고, 유학생도 보냈습니다. 또 발해관에서 금, 은, 모피, 말 등을 수출하며 활발하게 당과 무역을 하였습니다.


 10대 선왕 때에는 지방제도가 5경 15부 62주로 완비되고, 동쪽의 문화와 국력이 성대한 나라로 해동성국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중국에서 보면 발해가 동쪽이니 해동성국입니다.

 하지만 발해의 자료는 많이 남아 있지 않아 발해 멸망도 확실한 내부 기록은 없는 듯 합니다. 다만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의 기록을 보면 발해의 내부에서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손쉽게 이겼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아마 지배층인 고구려 후예들과 피지배층인 말갈인과 뭔가 모를 불협화음, 지배층 내부에서 권력 투쟁의 격화 등으로 나라의 힘이 약해져 있을 때, 당이 멸망한 후 세력을 팽창하던 거란에 의해 망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가 926년입니다.

 발해가 멸망한 후 우리 민족은 만주에서 더 이상 세력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저술한 <발해고>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하며 만주 지역에 관심을 드러냈습니다. 고려가 발해의 역사를 저술하지 않은 것에 대해 큰 불만을 나타나며 남북국시대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발해를 세운 사람이 대씨이고 고구려인이니 발해의 역사는 바로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를 통해 발해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을 통한 발전을 염원하는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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