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몰락


조세핀과 에메 뒤비크는 서로 사촌지간입니다. 에메 뒤비크는 1763년 출생하는데 어려서 부모가 죽자, 삼촌에게 맡겨져 조세핀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같이 지내며 사촌간이지만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에메 뒤비크는 수도원에 들어가기 위해 배를 타고 가다가 해적선의 습격을 받아 오스만제국 하렘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하렘이란 황제의 후궁들과 시녀들이 거처하는 금남의 구역이었으며 여자들이 한번 들어오면 하렘 밖으로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은 황제의 선택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메 뒤비크는 압둘 하미트 1세의 선택을 받아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이 마흐무트 2세였는데 나중에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수도원으로 가다가 팔려와서 일약 오스만제국 황제의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조세핀은 물론 아다시피 나폴레옹과 결혼을 하지요.

오스만 제국의 황제가 된 마흐무트 2세. 하지만 즉위 초 반란이 일어납니다.

이에 에메 뒤비크는 사촌동생 조세핀에게 SOS를 칩니다. 조세핀은 나폴레옹을 부추겨서 오스만제국으로 들어가 반란군을 무찌릅니다. 이렇게 하여 오스만 제국과 프랑스는 아주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나폴레옹은 영국과 지난한 싸움을 합니다. 그러다가 대륙봉쇄령을 내립니다. 즉 영국과 유럽 여러나라 간의 무역을 금지하여 영국을 봉쇄하고 경제적 타격을 가하려는 계책이었습니다. 이 대륙봉쇄령을 효과적으로 가하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영국은 목재를 러시아에서 대부분을 수입했기에 러시아가 협조만 해 준다면 영국에 큰 타격을 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당시 목재는 생활용품에 필요하지만 전쟁에도 중요한 물품이기 때문에 러시아를 끌여 들인 것입니다.

러시아도 처음에는 대륙봉쇄령에 긍정적이었으나 상인들이나 귀족들의 반대로 영국과의 무역을 재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추진합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혹한, 러시아 원정 시 넘어야 하는 산악지대 등의 이유로 프랑스 국민 대다수는 러시아 원정길을 반대하였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강력하게 추진을 합니다. 일단 러시아는 오스만제국과 전쟁 중이기 때문에 쉽게 정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지요. 또 프랑스와 오스만제국과는 친분관계도 있으니 러시아 원정을 성공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였습니다.


드디어 나폴레옹은 원정 군대를 꾸려 러시아로 갑니다. 하지만 이때 오스만제국과 러시아가 휴전을 맺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시나리오가 전개된 것입니다. 러시아는 오스만제국과 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니 온 군대를 프랑스와의 싸움에 투입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전쟁 결과 프랑스 나폴레옹 군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대패를 당합니다.(64만명 중 62만명이 전사하였다고 전해진다.) 이 전쟁의 책임을 물어 황제에서 쫓겨나 엘바섬에 유배당하는 신세로 전락합니다. 여기에서 나폴레옹은 생각합니다. 도대체 오스만제국이 왜 러시아와 휴전협정을 맺었을까?

 '오스만제국이 휴전협정만 맺지 않았어도 승산은 내게 있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해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휴전 협정의 이면에는 에메 뒤비크라는 여인이 있었던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오스만 제국 황제의 어머니입니다. 에메 뒤비크는 나폴레옹이 한 짓에 분노하여 프랑스의 숙적이었던 영국과도 손을 잡고,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길에 오르자 러시아와도 전쟁 그만하자고 휴전을 해 버립니다.


그렇다면 왜 에메 뒤비크가 분노했을까요?

그것은 자신과 어렸을 때 친자매처럼 지냈던 조세핀, 오스만 제국의 반란을 진압하는데 도와준 조세핀. 그런 조세핀을 나폴레옹이 강제 이혼해 버린 것에 분노하여 나폴레옹에게 처절한 복수를 안긴 것입니다. 오스트리아 황녀와 정략결혼을 하기 위해 조세핀을 이혼녀의 신세로 전락시킨 나폴레옹을 에메 뒤비크는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었지요.


아! 여자가 한을 품으면 한여름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에메 뒤비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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