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가 고구려를 시작으로 고대국가로 발전해 나갑니다. 고대국가라 함은 왕위가 세습되고, 율령이 반포되고, 불교를 수용하며, 영토를 확장하여 국가의 기틀이 완성된 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는 기원 전 37년에 국가가 형성되어 태조왕 때 계루부의 고씨가 왕위를 세습하게 되고, 5부체제로 발전을 하며, 동옥저를 정벌합니다. 고국천왕 때에는 왕위 세습이 부자 상속이 되었으며, 을파소의 건의로 진대법을 시행하였습니다. 진대법은 흉년이나 곡식이 부족한 시기에 백성들에게 곡식을 대여해 주고, 수확기에 갚도록 한 구휼제도입니다. 진은 곡식을 나눠주는 것이고, 대는 대여하고 갚는다는 뜻입니다. 이는 농민층의 몰락을 막고, 이들이 귀족 세력으로 편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왕권 강화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소금장수로 알려진 을불은 미천왕이 되어 영토확장에 열을 올렸다. 낙랑군과 대방군을 몰아내고, 낙랑과 대방이 하던 중계무역의 이익을 얻어 경제적으로도 부유해졌습니다. 소수림왕 때에는 중국 전진에서 순도라는 사람이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하여 불교를 수용하였습니다. 불교라는 하나된 신앙을 통해 나라의 정신을 통합하고 왕실과 부처의 권위가 같다고 생각하여 왕권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고구려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율령을 반포하였습니다. 율령이란 옛날에 지켜야 할 법입니다. 인재를 키우기 위해 태학이라는 학교를 세웠는데 우리 역사상 최초의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태학에서는 중국으로 유입된 유교 이념을 가르쳤으며, 상류층 자제만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 평민들은 태학에 들어갈 수 없어, 경당이라는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소수림왕의 업적에 힘입어 우리 역사상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한 광개토대왕이 즉위합니다. 최초로 영락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중국 방면으로 영토를 크게 확장하였습니다. 39세의 짧은 생애였지만 그가 이룩한 공적은 서양의 알렉산더와 비견할 수 있습니다. 광개토왕의 업적은 광개토대왕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왕의 은택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엄은 온 세상에 떨쳤다. 나쁜 무리를 쓸어 없애자 백성들이 모두 생업에 힘쓰고 편안하게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풍족해졌으며, 온갖 곡식이 가득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나보다.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었다."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이어받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고 남하정책을 추진하였습니다. 충주에 중원고구려비를 세웠고 백제를 공격하여 백제의 수도 위례성을 함락하였으며 한강 이남까지 진출하였습니다. 왕명이 장수왕인것처럼 오래 살았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고구려의 전성기는 후대에 가면서 잦은 외적의 침입과 지배층의 반목으로 나라의 힘이 약해집니다. 연개소문, 양만춘 등 용맹한 장수들이 있어 당의 침입을 잘 막았지만 연개소문 사후 후계자들의 권력다툼과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고구려는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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