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으로 시작하여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애국가에 대해 알아봅니다.  미국의 국가는 국기에도 나와 있듯 별이 빛나는 깃발이고, 영국의 국가는 입헌군주제답게 신이여 여왕폐하를 지켜 주소서이고, 일본은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요하던 기미가요입니다.

 19세기 말 세계의 강대국과의 여러 조약을 맺으며 나라의 문을 열어 개화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본은 메이지 유신 후 나라의 힘을 키운 후 우리 나라를 야금야금 침략합니다. 이에 맞선 조선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을 하며 애국 애족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그리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여러 가지 노래가 전국 각지에서 불리워집니다.

 1882년 조선과 미국이 통상조약을 체결합니다. 조약식에서 양국의 국가를 연주하는 의식이 있었습니다. 먼저 미국의 국가가 연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가가 없어 미국의 민요가 울려 펴졌습니다. 그때까지도 국가가 없었던 것입니다. 고종은 조약식에서 연주할 국가가 없다는 것에 너무나 비통해 하였습니다. 그래서 고종은 대한제국의 국가를 만들고자 합니다. 충성심을 돋구고 애국심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에는 서양음악을 할 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양식 군악대도 만들었는데 교육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로서는 엄청난 월급인 300원을 지급하며 독일인 음악가 에케르트를 초빙하여 군악대도 지도하고, 대한제국 국가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당시 쌀 한가마니 값이 6원정도 였으니 월급 300원은 어마어마한 액수였습니다. 에케르트는 군악대를 가르치며 대한 제국 애국가를 만들었습니다. 피콜로, 오보에, 클라리넷 등 서양 악기가 연주되고 가사는 한글로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가사의 내용이 너무 어렵고 연주되는 악기 또한 우리나라 정서와 동떨어져서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습니다. 일제는 이 노래를 금지곡으로 지정하여 대한제국의 애국가는 7년만에 부를 수 없는 곡이 되었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올드랭사인 곡에 가사를 한국어로 하여 국가를 불렀습니다. 3.1 운동 때에는 이 노래를 부르고, 국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하였습니다. 윤치호가 작사하였다는 현재의 애국가 가사에 부르기 쉬운 올드랭사인 곡으로 부르니 전국적으로 대대적으로 불리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익태는 아름다운 가사, 감동적이고 박력있는 가사에 남의 나라 민요를 빌려서 애국가로 부른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것도 이별할 때 부른다는 민요였기에 우리나라 애국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꼭 애국가를 만들겠다는 집념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곡조를 넣어 만든 애국가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 공식 연주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국가인 애국가는 일제 치하의 고난과 역경을 버티게 한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작곡가 안익태는 후일 변절하여 일본을 찬양하였다고 하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나라가 없으면 애국가도 없습니다. 군대에서 매일 불렀던 애국가인데 요즘은 애국가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각종 행사 시 열심히 애국가를 불러야 하겠습니다.

'역사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의 과거시험 무과에 대하여  (0) 2018.05.26
조선의 형벌 5가지  (0) 2018.05.25
대한민국의 애국가  (0) 2018.05.23
어린이를 위한 방정환  (0) 2018.05.21
연산군 이야기  (0) 2018.05.20
조선의 마지막 옹주 덕혜  (0) 2018.05.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