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들을 잘 선발하여 유교주의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였습니다. 문과, 무과, 잡과 등의 과거를 통해 문신, 무신, 기술 전문직 관리를 선발했던 일종의 공무원 시험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공무원 시험보다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뽑는 인원 수도 적고, 시험 공부 기간도 보통 20여년 정도 걸렸습니다. 물론 뛰어난 천재들은 일찍 과거시험에 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 과거 시험 중 무과 시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시대 유명한 장군인 이순신 장군도 무과에 급제하여 장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그도 말에서 떨어져 불합격하여 4년 후 다시 도전하여 1576년 병과 4위로 급제합니다.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문신과 무신의 양반제 사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태종 2년인 1402년 무과 시험이 처음으로 시행됩니다. 3년에 한번 시험보는 정기시험인 식년시와 나라의 경사가 있거나 인재의 등용이 필요한 경우에 치르는 별시가 있었습니다. 별시 중에서도 지방에서 행한 예도 있었는데 이를 외방별시라고 합니다. 세조 때에 온양, 평양, 강릉에서 시험을 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양별시, 평양별시, 강릉별시라고 불립니다. 식년시 무과는 최종 28명을 선발합니다. 갑과 3명, 을과 5명, 병과 20명입니다. 그러므로 이순신 장군이 병과 4위이므로 석차로 따진다면 12등 정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종 28명의 고위 무관이 되기 위해서는 3단계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1차 시험은 초시라고 부르는데 각 도의 인구 비례에 따라 190명을 뽑았다고 합니다. 경국대전을 보면 서울은 70명, 경상도는 30명, 충청도 25명, 전라도 25명, 강원도 황해도 영안도(함경도) 평안도에서 각각 10명씩 선발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문신 1명과 무신 2명으로 이루어진 시험관 감독하에 공정한 심사를 거쳐 초시 합격자 중 28명을 추렸습니다. 이 시험이 2차인 복시입니다. 경국대전 병전 편에는 무예 실기과목이 적혀 있습니다. 모두 6개로 나누어 무예 실기 시험을 보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240보(약 288미터)거리에서 화살을 쏘는 목전입니다. 목전은 시험용으로 나무로 만든 화살인데 3발이 사용됩니다. 둘째, 130보(약 156미터)거리에서 작고 짧은 화살을 쏘는 편전입니다. 편전은 애기살이라고도 불리우는데 짧고 사정거리가 깁니다. 셋째, 80보(약 96미터) 거리에서 무거운 화살을 쏘는 철전입니다. 깃은 좁고 날이 없는 둥근 철촉을 달았으며 사정거리는 80-180보입니다. 넷째,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입니다.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아 목표물을 맞히면 5점을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무예에서 중요시 되었으나 나중에는 총이 발달함에 따라 중요성이 떨어졌습니다. 다섯째, 말을 타고 달리며 창을 다루는 기창입니다. 말을 타고 가다가 목표물을 찌르면 점수를 얻었습니다. 여섯째, 말을 타고 작은 공을 다루는 격구입니다. 말을 타고 숟가락처럼 생긴 막대기로 공을 쳐서 상대을 골대에 넣는 일종의 놀이입니다. 놀이이지만 조선은 중요한 무예의 하나로 생각하였으며 군대 열병식에도 꼭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무과는 이렇게 다양한 활쏘기와 마상 무예로 이루어졌으며 무과 실기는 최고의 무관을 선발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러나 조선 세종 때 신하들이 문과는 어렵고 무과는 쉽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과에 많이 몰린다고 아룁니다. 사람들이 학문을 깊이 연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무과에 몰리면 학문이 진흥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그래서 추가된 것이 복시에 병법과 유교경전 등에 관한 구술시험입니다. 장수가 무예만 있고 지략이 없다면 작전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적을 관찰하여 변화에 수응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구술 시험이 추가된 것입니다. 최종 28명이 선발되면 마지막 관문인 3차 시험 전시입니다. 이 시험은 임금 앞에서 시험을 보게 됩니다. 여러 가지 무예를 시험하고 무예 점수에 따라 갑과 3명, 을과 5명, 병과 20명을 최종 선발합니다. 이중에서 갑과에 1등한 사람을 무과의 장원, 즉 무괴라고 불렀습니다. 화살을 쏘거나 창을 다루는 궁술과 말을 타는 기마 전술에 중점을 두었던 조선의 무과는 임진왜란 이후 변화됩니다. 바로 총포의 등장과 전술의 변화로 조총, 편추, 유엽전 등 무과의 시험과목이 확대된 것입니다. 약 500년동안 조선의 무장을 뽑은 무과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식 관리 선발제도가 생겨나면서 폐지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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