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초기는 왕정에서 출발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에 반발하여 기원전 509년 왕정을 축출하고 귀족적인 공화정이 형성됩니다. 의결기구인 원로원은 300, 집정관은 2명으로 구성되어 권력을 여러 명이 나눠 다스립니다. 원로원과 집정관은 모두 귀족으로 구성되어 귀족적 공화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로원에서 집정관 2명을 선출하고 1년 임기를 마치면 다시 원로원으로 돌아갑니다. 귀족들이 권력을 휘두르자 평민들도 스스로 무장을 하여 전쟁에 참여합니다. 이 당시 전쟁은 남의 땅을 빼앗거나 곡물을 약탈하여 자기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평민들은 중무장하여 전쟁에 참여하여 더 많은 이익과 토지를 얻게 됩니다. 힘을 키운 평민들은 점차적으로 정치적인 요구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하여 기원전 494년 민주적 공화정이 탄생됩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중무장한 평민들이 정치적인 요구를 해도 귀족들이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귀족들은 기득권을 내려 놓을 수 없었습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평민들은 성산사건을 일으킵니다. 즉 우리 평민들은 더 이상 전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성산에 모여 데모를 한 것입니다. 귀족들 너희들 마음대로 하고 너희들이 알아서 전쟁에 참여하라는 뜻이겠습니다. 귀족들은 평민들을 어루만지고자 호민관 제도를 탄생시킵니다. 호민관이란 평민들의 대표를 말합니다. 호민관은 원로원의 결정을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평민들을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기원전 472년에는 평민회가 구성됩니다. 호민관을 선출하고 평민을 위한 입법 활동도 하며 평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원 전 450년에 12표법을 제정합니다. 이 법은 로마 최초의 성문법으로 평민을 법으로 보호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평민들을 벌할 때 귀족들 몇 명이 모여서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처리하였지만 이제는 법으로 딱 정해져 있으니 귀족들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성문법으로 해 놨으니 그동안 관습법대로 처벌이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귀족들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할 수 없는 근거가 마련되었으나 아직은 귀족들의 힘이 더 센 시기입니다.

 기원 전 367년 리키니우스 법이 제정됩니다. 이제는 집정관 2명 중에 반드시 1명을 평민으로 선출해야 된다는 법이었습니다. 평민들의 힘이 점점 세져 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원 전 287년에는 호르텐시우스법까지 제정됩니다. 이 법은 평민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원로원 동의 없이 의결하여 실행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즉 이제부터는 법적으로 평민과 귀족이 동등해졌다는 의미입니다기원 전 270년 공화정으로 국력을 키운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합니다. 당시 지중해는 카르타고가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통일된 이탈리아는 영토 확장과 지중해 해상권에 대한 야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기원전 264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지중해의 해상권을 놓고 로마와 카르타고가 전쟁을 하는데 이를  포에니 전쟁이라고 합니다. 카르타고는 원래 페니키아가 개척한 나라로 고대 페니키아의 식민국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카르타고를 라틴어로 말하면 포에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포에니 전쟁의 승자를 로마로 끝납니다. 이로써 로마는 지중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고 지중해는 로마의 호수가 됩니다. 전쟁으로 인해 정복지에서 많은 곡물이나 노예들이 로마로 유입됩니다. 귀족들은 넓어진 토지에 정복지의 노예들을 데려다가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는데 이를 라티푼디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자영농들은 그동안 전쟁에 참전하느라 농사도 제대로 짓지 못하고 토지 규모도 영세하여 귀족들의 라티푼디움과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귀족들은 값싼 노동력으로 대규모로 수확물을 생산하니 먹고 살기 힘들었던 자영농은 토지를 귀족에게 팔아버리고 결국 몰락하게 됩니다. 포에니 전쟁으로 귀족들의 농장을 번성하고, 전쟁에 참전하여 열심히 싸웠던 자영농은 아이러니하게 몰락하게 됩니다. 자영농들이 몰락하니 자연적으로 공화정에 위기가 생겨납니다.

 이런 공화정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그라쿠스 형제입니다. 이들은 개혁을 통해 자영농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싼 값에 곡물을 사들여서 저가로 평민들에게 분배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기득권층인 귀족들은 찬성할 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두 형제들을 암살하고 맙니다. 또 기원전 73년에는 검투사 노예 계급인 스파르타쿠스가 주동이 되어 난을 일으킵니다. 검투사 경기는 당시 로마인들의 유흥거리였는데 이들이 집단 탈주하여 무기를 들고 배수비오 산을 근거로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주변 농장의 노예들도 탈출하여 배수비오 산으로 몰려 듭니다. 스파르타쿠스의 난을 진압하고 로마는 삼두정치가 실시됩니다.

 1차 삼두정치는 기원전 60년에서 기원전 44년까지인데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이렇게 세 명이 권력을 독점하며 싸웠고 결국 카이사르가 승리합니다. 하지만 그는 독재권력을 휘두르다가 반대파의 암살을 당합니다. 2차 삼두정치는 기원전 43년부터 기원전 31년 까지인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세 명이 권력을 독점합니다. 그러다가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둘이 싸움을 하는데 그게 유명한 악티움 해전입니다. 이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 가 승리합니다. 악티움해전에서 이긴 옥타비아누스는 바로 황제로 즉위하지 않고 자신은 로마의 제1시민이라고 지칭합니다. 독재를 휘두른 카이사르와 반대 성향이어서 원로원은 흡족해 합니다. 그러는 사이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이 장악하자 원로원에서는 옥타비아누스를 밀어주게 됩니다. 당신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으로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까지 부여합니다. 이제는 황제정치 즉 로마 공화정이 로마 제정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후 약 200년간 평화 시대, 5현제 시대가 도래하여 팍스 로마나라고 불리우는 로마의 평화시대가 전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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