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후반 동아시아에서는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고 세력을 팽창하자 돌궐-고구려-백제-왜의 연합이 형성되었습니다. 수나라가 고구려를 압박해오자 영양왕은 수의 압박에 대항하여 요서지방을 선제 공격하였습니다. 수문제는 30만의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왔으나 실패하였습니다. 수 양제도 113만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략하였으나 요동성 공략을 실패하자,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성에 보내 전투를 벌였으나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크게 무찔렀습니다. 을지문덕은 평양성 근처까지 쳐들어온 별동대에게 거짓으로 패하는 척하며 수의 군사를 살수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이것이 살수대첩입니다. 수나라는 무리한 고구려 원정과 대운하 건설 등으로 국력을 낭비하여 2대만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수나라 멸망 후 중국에는 당나라가 들어섭니다. 당태종은 팽창정책을 추진하여 고구려를 또 넘봅니다. 고구려는 당의 침입에 대비 천리장성을 축조하고 연개소문은 스스로 대막리지가 되어 강경한 대당 정책을 펼칩니다. 그러자 당태종은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침입해 오지만 안시성의 양만춘 장군에게 대패하고 물러났습니다. 이렇게 고구려는 당을 슬기롭게 막아내어 한반도 침략을 저지하였습니다. 

 한편 신라는 백제 의자왕이 대야성을 공격하여 김춘추의 딸과 사위가 죽고 40여개 성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에 김춘추는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실패하여 당과 손을 잡을 방법을 모색합니다. 진덕여왕 때 딸과 사위의 원한을 어떻게든 갚고자 한 김춘추는 위험을 무릅쓰고 당나라로 건너갑니다. 마침 당나라도 고구려 공격이 실패한 터라 신라 김춘추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되어 나당 동맹이 맺어집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약한 백제를 공격합니다. 백제는 계백이 황산벌에서 5천 결사대를 이끌고 막아서지만 중과부적으로 660년 사비성이 함락되고 맙니다. 이후 백제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벌이지만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맙니다. 백제를 멸망시킨 나당 연합군은 연개소문이 죽은 후 지배층이 분열된 틈을 타서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668년 평양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맙니다. 고구려 유민들도 부흥운동을 하였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고구려까지 멸망시킨 당나라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내며 웅진도독부, 계림도독부, 안동도호부 등을 설치하였습니다. 이에 신라는 대당 전쟁을 전개하여 매소성 전투와 기벌포 전투에서 당을 몰아내고 676년 삼국 통일을 완성합니다. 대당 전쟁에서는 비록 자신을 멸망시킨 신라이지만 당나라를 몰아내고자 백제 유민과 고구려 유민들도 협력하였습니다. 삼국통일의 의이는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당의 야심을 몰아내고 자주성을 확립하였으며 하나로 된 국가에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삼국통일은 외세를 끌어들였다는 한계와 만주지방의 영토를 잃어버린 채 대동강과 원산만 이남까지였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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