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4년 중국 산시성 린퉁현 여산 남쪽 기슭에서 우물을 파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양취위안이었는데 그는 우물을 파다가 철조각과 도기 인형 조각을 발견하였습니다. 양취위안과 친구들은 별 이상한 조각이 나온다고만 생각했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수도시설 담당자인 팡수민이 우물작업의 진척이 더디자 현장을 찾게 됩니다. 평소 고고학에 관심을 갖고 있던 그는 도기 인형과 철조각을 보고 이건 진나라 시대의 도기가 아닌가 생각하며 박물관에 알리면서 본격적으로 발굴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발굴해 보았더니 지하에는 흙으로 만든 병사 인형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발굴하였습니다. 도대체 이 군대들은 왜 지하에서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건 기원 전 210년에 죽은 진의 시황제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 진 시황은 조나라에 인질로 갔던 자초의 아들이라고 전해집니다. 여불위라는 사람이 자초의 인물됨을 보고 그를 후원합니다. 어느 날 자초가 여불위의 집에 가서 여불위가 총애하는 여인을 보았는데 그녀를 잊지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자초는 여불위에게 그녀를 달라고 하여 안된다고 하였으나 결국 자초의 여인이 됩니다. 하지만 이미 여인의 배 속에는 여불위의 자식이 잉태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시황제라고 사마천의 사기에 전해집니다. 어찌하여 여불위의 소생인 시황제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태후(여불위가 자초에게 넘겨준 시황제의 엄마)는 어느 날 여불위를 만나 다시 예전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이 일이 발각되는 날에는 시황제에게 죽임을 면치 못할 것 같아 노애라는 사람을 소개해 줍니다. 노애를 환관으로 위장시켜 태후궁으로 보낸 것입니다. 태후는 노애를 총애하다가 결국 노애의 애까지 가지게 됩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그리하여 태후는 시황제에게 말하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살겠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태후는 노애의 애를 낳고 살아가다가 그 사실이 시황제에게 발각되어 노애를 죽이고자 합니다. 그러자 노애가 역모를 꾀하다가 죽게 되고 그 일로 여불위까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태후도 유폐당합니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후 진시황은 나라의 힘을 키우며 그의 천하를 만듭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사마천의 사기에 전해오는 이야기로 사실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합니다. 여불위의 자식이라는 것, 자초를 왕위에 올렸다는 것 등등이 일부러 진 시황제를 폄하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china의 어원인 진나라는 시황제의 부국강병책으로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하였습니다. 중국 최초 통일 국가를 만든 것입니다.  강한 국가만이 난세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진나라를 강하게 하기 위해 한비자의 법가 사상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웁니다. 즉 법가 사상에 근거하여 강력한 법치로 부국 강병을 이루고 기원전 221년에  춘추전국 시대를 통일한 것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후 <나는 이제 최초의 황제다. 앞으로는 폐하라고 부르도록 한다.>라고 하며 최초의 황제 즉 시황제로 즉위를 합니다. 시황제로 즉위한 후 군현제의 운영과 관료제의 도입으로 중앙집권을 강화시킵니다. 그는 진나라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화폐와 문자와 도량량형까지 통일을 하였습니다. 그래야만 나라를 통치하는데 유리한 점이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도량형이란 길이, 부피, 무게 등과 관련된 단위를 통일하였다는 것입니다. 도는 길이 및 길이를 재는 자, 량은 부피 및 부피를 재는 도구(되나 말), 형은 무게 및 무게를 재는 저울을 뜻하는 것입니다. 

  • 이런 진시황의 강력한 법가 사상에 근거한 통치와 중앙집권에 대해 유가 사상가들의 반발과 비판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러자 진시황은 유가 사상가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하게 합니다. 그게 바로 분서갱유입니다. 승상 이사가 주장한 탄압 정책으로 역사서, 의약서, 농업서적 등 실용서적을 제외한 모든 책을 불사릅니다. 그리고 유가 사상가들을 처형 또는 생매장하여 강력하게 사상을 통제합니다. 이로써 유가 사상은 크게 위축됩니다. 북방에서는 중국을 괴롭히는 흉노가 발호합니다. 시황제는 흉노를 토벌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아 흉노가 중국땅을 다시 넘보지 못하도록 하고자 합니다. 춘추전국시대의 성벽들을 하나하나 연결하는 대역사를 시작하여 만리장성을 건설한 것입니다. 강력한 대제국을 건설한 시황제는 영원한 삶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황제의 권력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신하들에게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하달합니다.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보기도 하고 다른나라까지 가서 찾아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불로초를 얻지 못하고 기원 전 210년 진나라 전국을 돌아보는 순행중에 49살을 일기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시황제가 죽은 후 그의 가혹한 법치와 대규모 토목 공사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의 봉기가 일어나 기원 전 206년에 진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 진시황의 병마용갱은 아직도 발굴 중이고 복원중입니다. 지난 번에 가보니 관광객이 엄청 많고 입장료로 비싼 편입니다.  진사황의 사후세계를 지키고 있는 지하 군대의 모습은 규모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웅장하고 병사들의 모습도 장관입니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도기 인형의 군사들은 열을 잘 지어 서 있었으나 군데군데 파손된 곳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한쪽에서 모아 놓고 복원하고 있는 작업실이 보였습니다. 중국 시안에 가시면 꼭 들러야 할 필수 코스인 진시황릉 병마용갱은 우리들을 벅찬 가슴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진시황릉을 찾아서>

진시황릉은 교과서에 나오는 장소이고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유적지라서 아이들과 함께 견학하러 갔습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온 공자 영자초는 여불위 집에 자주 갔습니다. 거기서 조희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조희는 여불위의 애첩이라고 하는데 공자 영자초는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불위, 조희를 내게 주시오."

"아니, 공자님. 조희는 저의 여인입니다. 어찌 공자께서는 남의 여인을 달라고 하십니까?"

"여불위, 부탁이오. 내게 주시오."

이렇게 하여 공자 영자초는 조희를 아내로 삼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이미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영자초는 인질 생활을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와 장양왕이 됩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한 상태라 그만 일찍 죽고 맙니다. 이렇게 하여 13세의 시황제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조희(조태후)는 남편을 잃었지만 여불위라는 과거 남편이 있지요. 둘이서 몰래몰래 각별한 사이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발각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람을 환관으로 위장시켜 조태후 처소로 보냅니다. 조태후와 노애는 곧 열애하는 사이가 됩니다. 조태후는 걱정이 됩니다. 자신의 아들 진시황이 알게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거처를 수도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깁니다. 그곳에서 노애는 조태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게 뭔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2명의 아들까지 낳게 됩니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진시황이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노애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진시황의 군사들에게 노애는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 조씨 또한 감금합니다. 2명의 아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지요. 그리고 이게 모두 여불위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여불위까지 자결하게 합니다.(여불위의 아들이 진시황인지 모르겠으나 여불위열전의 기록에는 나와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조태후는 여불위의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태자와 혼인하고, 태자가 죽자 여불위와 다시 만남을 가지고, 노애라는 사람과 아이 2명이나 낳고, 여불위는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진시황의 무덤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습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던 농부의 농기구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니 인간을 본떠 만든 조형물이었지요. 그때 마침 기자가 그것을 알고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고 기사를 썼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모택동은 고고학자들을 급파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본격적인 조사를 해보니 그곳은 바로 진시황의 무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유교적 이념을 없애기 위해 분서갱유를 실시하여 많은 서책과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묻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황제로도 유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법을 만들고,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물자 이동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대운하도 만들었습니다. 또 건축에도 열의를 보여 인공위성으로 보면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지만 영생을 바라는 마음에서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먹다가 불로장생약인 줄 알고 먹었던 것이 수은이었다. 결국 인체에 치명적인 수은으로 병약해 져 전국 순행 도중 죽게 됩니다.(순행 도중 이사, 조고, 호해 등이 죽음을 숨기고 원래 황태자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생전에 자신의 묘가 도굴될 까 염려한 그는 철저한 보안 속에 무덤을 만들고 가묘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관련된 기록도 없애고 무덤을 만드는데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의 무덤은 큰 손상없이 발굴되었던 것입니다. 도기 모양의 인형들이 진시황을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 흡사 실제 살아있는 병사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압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입장료가 중국 물가에 비해 많이 비싼 것이 흠입니다. 영국 박물관처럼 무료가 아니더라도 조금 싸게 받아도 될 듯한데....

무덤의 규모 및 실물보다 더 큰 도기 인형들 정말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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