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사변 발생>

1895년 경복궁 옥호루에 난입하여 조선의 국모 명성황후를 시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을미사변이지요. 

일본 낭인, 칼을 쓰는 깡패 같은 무뢰배 놈들이 일국의 왕비를 시해한 끔찍한 사건입니다. 

<치하포 사건>

이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후 황해도 치하포 나루터 주막에서 국밥을 조용히 먹고 있던 조선 사나이가 있었습니다. 국밥을 먹고 있던 그 순간 그는, 조선인의 복장을 하고 주막집으로 들어오는 한 일본 사람을 보았습니다. 치하포 나루터는 일본인이 원래 일본 옷을 입고 돌아다니던 곳이었는데 왜 조선사람 복장을 하며 돌아다닐까? 하며 의심을 하며 그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그런 의심을 하고 있던 찰나 조선 복장을 한 일본 남자가 칼을 지니고 있던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니, 저 놈은 왜 굳이 조선 복장을 하고 있으며, 그것도 모자라 칼을 지니고 있을까? 저 놈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깡패놈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시해하고 여기로 도망한 놈 같구나. 만약 아니다 할 지라도 조선 복장을 하고 일본 칼을 가지고 다니는 놈은 언젠가 조선 사람을 해칠 것이다. 미리 손을 써야겠다. 내 저자를 죽여 국모를 죽인 원수를 갚아야겠다.'

슬쩍 일본 남자 앞으로 간 조선 사나이

"당신은 왜 조선 복장을 하고 다니시오. 그리고 그 칼은 또 무엇이오?"

"이런! 빠가야로!"

조선 사나이를 향해 칼을 뽑는다. 하지만 조선 사나이의 발길질이 벌써 일본 남자의 급소를 강타한다. 그리고 그 칼로 일본 남자를 처단한다. 그 일본 남자는 조선 사나이가 짐작한 대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가담했던 일본 장교 쓰치다 였습니다.

이 치하포 사건으로 조선 사나이는 인천 교도소에 투옥됩니다.

<임금님의 전화로 사형집행을 면하다.>

사형이 언도 되어 사형 집행날을 기다리는 조선사나이

'난 조선사람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의로운 일을 했기에 여기서 죽어도 원한이 없다.'

사형 집행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시점. 

"전하! 지금 인천 교도서에는 명성황후를 시해에 가담한 일본 장교 스치다를 처단한 조선 사나이가 사형집행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뒤늦게 보고를 받은 임금은 급히 전화를 합니다. 이 전화기는 며칠 전 한양 궁궐과 인천 간에 개통되었던 전화기 였습니다.

"당장 그 조선인의 사형 집행을 멈추어라. 어명이다."

어명을 내린 이는 바로 고종이었고,

인천 교도소에서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조선 사나이는 김창수였습니다.

김창수가 누구인가?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백범 김구 선생의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당시 한양 외 전화가 개통된 곳은 인천이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백범 김구 선생의 사형 집행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공식문서로는 남아있지 않고 백범일지에 기록되어 있어 스치다가 민간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고,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육군 중위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김구를 옹호하지 않는 입장에서는 '스치다는 민간인이다.', 김구를 옹호하는 입장에서는 '스치다는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인이다.' 라고 주장하지요.

고종의 전화로 목숨을 건진 김구 선생은 그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 독립운동을 위해 온 힘을 쏟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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