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를 찾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다빈치가 세상을 떠나는 그순간에도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림이 모나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원래 이름은 <피렌체의 어느 귀부인>이었다가 나중에 이 그림이 프랑스왕이었던 프랑스아 1세에게 넘겨지자 <베일을 두른 애인>이라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가 조르지오 바사리가 이 그림에 부인을 뜻하는 <모나>와 그림을 의뢰한 사람의 부인의 이름 리자 게라르드니 중 <리자>를 가져와서 <모나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빈치가 살았던 중세 시기에는 얼굴에 명확한 선으로 경계를 만들어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데 이른바 스푸마토 기법입니다. 이는 미세하고 섬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얼굴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여 부드러운 표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때 황금비율에 따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모나리자 역시 1:1.618의 황금비율로 얼굴과 상반신의 비율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이 안정감이 있으며,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의 모델은 누구일까요? 여러 의견이 분분한데요. 먼저 모나리자는 다빈치 자신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빈치의 웃는 모습을 여성처럼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동성애를 맺은 사람의 얼굴을 여자처럼 그린 것이라고 하는 의견입니다. 다빈치는 예전에 동성애를 하여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성애를 하면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매우 엄격한 죄를 물었는데 다빈치가 체포된 것입니다. 정말 운좋게 다빈치의 동성애 관련 청년이 메디치 가문의 사람이라 다빈치도 석방이 됩니다. 하지만 이 일로 그는 동성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라이라는 청년의 멋있음에 반하여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살라이를 남성으로 그리게 되면 그도 또한 동성애자라고 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여성으로 그렸다는 설입니다. 살라이는 다빈치의 제자인데 도벽으로 인해 많은 속을 썩였어도 그를 제자로 두고 <모나리자>그림을 자신이 애지중지 하다가 죽기 전 살라이에게 전해달라고 하였으니 살라이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 그림을 좋아했던 사람 중에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의 정신세계도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다빈치의 그림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에서 동성애 성향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다빈치가 진짜 동성애자였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동성애자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수는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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