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세도정치로 왕권은 약화되고 수령과 아전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삶은 고달퍼집니다. 그래서 순조 때 몰락 양반인 홍경래가 중소 상인과 광산노동자와 함께 홍경래의 난을 일으킵니다. 평안도 지역의 차별로 인해 가산에서 시작되었으나 관군에게 집압되었다. 또 진주 지방을 중심으로 임술 농민 봉기가 일어납니다. 우병사 벼슬을 했던 백낙신이 탐욕과 수탈에 저항한 민란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권력을 잡은 흥선대원군은 대대적으로 나라의 정신을 세우고 통치체제를 대대적으로 정비합니다. 몇몇 세도가에 의해 약해진 왕권을 강화하고 문란해진 삼정을 개혁하여 민생 안정을 도모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중 진주민란의 원인이기도 한 삼정의 문란입니다. 삼정은 전정, 군정, 환곡이 있습니다. 전정은 농지에 부과하는 세금입니다. 군정은 군적과 군포에 관련된 규정입니다. 여기서 군적이란 군역 편성의 기준이 되는 문서를 말하고 군포란 병역을 면제해주는 대가로 받던 베를 말합니다. 환곡은 춘궁기에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기에 되받는 제도인데 오늘날의 복지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시아버지 죽어서 이미 상복 입었고, 갓난 아이 배냇물도 안 말랐는데,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오르다니, 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하여 하여도, 범같은 문지기가 버티어 있고 이정이 호통치며 소까지 끌고갔다. 이글은 정약용의 애절양에 나오는 것으로 죽은 사람과 갓난아기까지 군포를 내야 하는 절박한 심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541년 군적수포제 실시 이후 장정 1인당 군포 2필로 병역의 의무를 대신하게 되지만 특권 계층인 양반은 군포를 면제시켜 줍니다. 군적수포제란 모든 군정에게서 포 2필을 거두어 들이고 이 재정을 이용하여 군인을 고용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애정양처럼 3대가 함께 살면 자그마치 군포가 6필, 또는 한 가정에 장정이 세명이어도 군포가 6필을 내야 합니다. 여기에 지방의 수령과 아전들의 횡령이 심해지면서 백성들의 부담은 엄청나게 불어납니다. 국가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삼정이 지방 수령과 아전들의 배를 불리는 불법적인 수단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 예로 군포를 내지 못해 도망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이웃에게 대신 내도록 하였습니다. 이를 인징이라고 합니다. 또 그 친족들에게 내도록 하는 것이 족징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동네 사람들에게 내도로 하는 동징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도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물리는 황구첨정 등으로 백성들의 삶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피폐해진 민심은 급기야 농민 봉기로 이어졌습니다.  세도정치는 극에 달해 지배층은 부패해지고 사회는 혼란해져 갔습니다. 이런 혼란을 바로 잡고자 등장한 흥선대원군은 각종 개혁의 칼을 빼어 듭니다. "이제는 양반들의 면세 특권을 폐지한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집집마다 군포를 내도록 하라." 이렇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양반 유생들이 "충신의 자손에까지 세금이 부과된다면 장차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까?"라고 반발을 합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물러서지 않습니다. "일반 평민이 충신의 자손 몫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이또한 충신의 본뜻이 아닐 것이다. 당장 시행하도록 하라" 이렇게 양반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호포법이 시행됩니다. 이제부터는 양반과 상민 관계 없이 군포의 부담을 져야 합니다. 당시 신분제 사회에서 양반들이 내게 되면 군포를 부담하는 사람들이 약 60% 씩이나 증가됩니다. 그렇게 하여 백성들의 부담은 현저하게 감소되었습니다. 국가의 재정은 크게 확보되고 민심이 안정되는 효과를 거두게 됩니다.

백성들은 동등하다고 말하면서 사족을 업신여기고 반호는 스스로 특별하다고 생각하여 포의 납부를 거절하고 있습니다. 분수를 어기고 명령을 어기는 것이 어찌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반상의 구별을 두지 않는 세금징수제 호포법은 양반의 존엄을 해친다는 이유로 양반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의 입지는 점차 흔들리게 됩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양반과 상민의 신분을 구별하는 기준이었던 군정제도의 개혁으로 사회적인 개혁이 이루어집니다. 특히 1882년 고종은 "서북인 서자 중인 하급 아전과 군졸 등을 차별하지 않고 높은 관직에 등용하겠다"라고 말하며 신분에 따른 차별대우는 점차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갑오개혁에서 조선의 신분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1894년 이후로 신분제도는 문서 상으로는 사라졌으나 사회 전반에서는 없어지지 않고 지금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로 신분제도가 암암리에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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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고종 임금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당시 조선 조정은 안동김씨들이 정권을 꽉 잡고 있어 그들의 눈에 거슬리는 왕족은 모두 귀양을 가거나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헌종이 죽은 후 임금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저 멀리 강화도에서 나뭇꾼을 하던 사람을 왕으로 앉힙니다. 그가 바로 철종입니다. 철종은 자신의 의지와 전혀 상관없이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관심 밖의 일이었습니다. 술이나 먹으면서 안동김씨가 하라는 대로 하면 되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의 감시를 피해 철저히 자신의 몸을 낮추고 상가집 개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비굴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철종이 후사도 없고 병이 들게 되었습니다. 이제 흥선대원군은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더욱 더 미친 놈 소리를 듣는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완전 파락호 생활을 이어간 것입니다. 이때 그의 뺨을 얼얼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요. 그 장소는 어느 술집(기생집)입니다.


기생들: 어휴, 저게 무슨 왕족이야! 누가 좀 저놈 잡아갔으면 좋겠어. 왕족 망신 아니 나라 망신 다 시키고 다니네...쯧쯧

대원군:(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여봐라. 술을 가져오너라. 술이 다 떨어졌다. 수우울을 달란 말이다.

기생집 주인: 아니 왕족이면 곱게 술을 마셔야지요. 그리고 외상값이 얼마나 밀렸는지 아세요?

대원군: 외상값은 곧 갚을테니 잔말말고 술이나 가져오너라.

기생집 주인: 안돼요. 그만 가세요.

대원군: (화가 나서 기생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일어서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그는 군관 이장렴이었다.

이장렴: 대감. 체통을 생각하시어 그만 드시고 댁으로 가십시오. 제가 모시겠습니다.

대원군: 아니, 이놈은 또 누구냐? 내가 누군 줄 알고 까부느냐. 내 비록 이렇지만 그래도 왕족이거늘 하찮은 군관놈이 이렇게 무례한 것이냐?

이장렴: (대원군의 뺨을 후려 치며) 왕족이면 왕족답게 체통을 지켜셔야지요. 이게 무슨 추태입니까? 외상술 이나 마시고 돈도 갚지도 않고 그렇게 왕실을 더럽혀셔야 되겠소이까? 제가 왕실을 존중하고 이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뺨을 때린 것이니 그리 아시오.

대원군: (허허 그놈 참...)

세월이 흐르고 흘러 고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흥선대원군은 사람을 보내 이장렴을 운현궁으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이장렴: (어찌할 바를 모르고)여보. 이제 오늘이 마지막인 것 같소. 대원위께서 부르시니 필시 그날 뺨을 때린 일로 나를 문초할 것이오. 아마 난 살아오지 못할 것 같소. 부디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이장렴아내: 흑흑, 그러니 왜 뺨을 때려서가지고...부디 잘 말씀드리고 살려달라고 하세요.

이장렴은 운현궁으로 불려 갔다.

대원군: (눈알을 부라리며) 네이놈. 네가 예전에 내 뺨을 갈긴 놈이렷다. 그래, 지금도 내 뺨을 때릴 수 있겠느냐. 이놈!

이장렴: (머리를 숙이며) 대감. 예전의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대감께서 뺨을 때릴 수 있겠냐 물으셨는데 대감께서 혹시 지금도 못된 술버릇을 가지고 있다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이 손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대원군: (고개를 끄덕이며) 야! 이놈아. 내가 지금 그 술집으로 외상술이나 먹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네놈때문에 가지 못하겠구나. 또 뺨을 맞을까봐.  하하하.....

이장렴: (눈을 껌뻑거리며) 송구합니다요. 대감.

흥선대원군: (호탕하게 웃으며)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여기 거하게 술상 봐오거라.

그렇게 이장렴은 흥선대원군에게 호된 벌을 받지 않고 극진한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장렴이 돌아갈 때는

흥선대원군: 여봐라. 극진히 모셔라. 금위대장님 나가신다.  정중히 모셔라.

아무리 흥선대원군 앞에서도 할말을 다 하며 무장의 도리를 다한 이장렴과 인재를 알아보고 관용을 베푼 흥선대원군의 일화에서 참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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