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김주성, 황보관, 홍명보 등과

멋진 활약을 한 최강희 선수


1차전 벨기에와의 경기

우리 골키퍼가 앞으로 나온 틈을 타고 1골 실점,

중거리 슛으로 1골 또 실점

2:0으로 패배

수비 집중력이 아쉬웠던 경기


2차전 스페인과의 경기

먼저 1골을 실점한 상황에서

황보관의 시원한 중거리 슛으로 동점을 만들었으나,

미첼 선수의 프리킥 골과 돌파에 이은 또 1골

3:1로 패배


3차전 우루과이와의 경기

1:0으로 패배


3전 전패로 예선탈락했으나,

황보관 선수의 슛은 지금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왜 1990년 월드컵 이야기를 하느냐?

바로 최강희 선수가 풀타임 뛰며 시합을 했던 월드컵이기 때문입니다.


최강희 선수는 우신고등학교 재학 시절 축구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담배까지 배운 그는 축구 연습이 끝나면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이러니 대학 진학에 실패하고,

간신히 한일은행에 입단합니다.


군복무는 군 축구팀에 들어가 운동을 하며

어렵게 축구선수의 길을 이어나갑니다.

한일은행, 포항을 거쳐 1984년 현대호랑이 축구단에 입단합니다.


그런데 이 당시 감독이 조중연 감독이었는데,

이때까지도 담배를 피웠습니다.

운동선수가 담배를 피우면 그만큼 심폐지구력이 떨어져

경기력이 좋아질 수 없었을텐데....


그러다가 1987년 담배를 끊고 축구에 전념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여 드디어 국가대표 수비수가 됩니다.

이렇게 하여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엔트리에 들어가

비록 3전 전패했지만 열심히 경기장을 누볐습니다.

이후 1992년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을 걷습니다.

2002년에는 쿠엘류 감독을 보좌하는

부산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전북 현대의 감독으로

봉동이장, 강희대제라는 애칭을 얻었습니다.


봉동이장 유래

 전북 완주군 봉동읍에 전북 현대의 훈련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골 마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최강희 감독의 외모와 성품을 표현하기 위해

봉동이장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강희대제

2006년 전북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하여

중국 언론이 붙인 애칭


봉동이장님께서 이젠 중국으로 진출하여

만리장성에 우뚝 서려고 합니다.

전북 현대에서 이동국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변신시킨 지도력

1골 먹으면 2골을 넣자는 닥공 전략


올해는 1부리그 1위를 확정 지었는데

9위 서울과의 승점 차이는 42점이나 됩니다.


봉동이장님을 모셔가는 구단은 중국 톈진 취안젠

연봉은 무려 85억원(세후 약 50억원)

계약기간은 3년

중간에 계약을 파기해도 3년의 연봉을

모두 지급 받는 조건이라고 합니다.


전북 구단과 아름다운 이별을 하고

중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최강희 감독이

날개를 활짝펴고 더욱 멀리 날아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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