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 출신인 묘청이 1135년 일으킨 사건이 서경천도 운동입니다.

일명 묘청의 난이라고도 합니다.

1126년 이자겸은 경원이씨 가문으로 왕실과 혼인하며 약 80여년간 부귀영화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니 왕의 측근들과 다툼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이자겸은 척준경과 함께 난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지만 척준경에게 제거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 경주 김씨 세력과 같은 문벌 귀족들이 정치를 장악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지방 출신의 새로운 관료들에 의해 특정 가문의 권력 장악에 대한 반발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서경 출신의 승려였던 묘청과 정지상, 백수한 같은 신진 관료들은 당시 고려왕인 인종에게

고려왕이 황제 칭호 사용, 금국 정벌을 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개경은 지운이 다했으니, 서경으로 천도를 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려의 북진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는데, 개경의 문벌귀족들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금나라와 형제 관계를 맺고 북진정책을 중단하였기에 금국 정벌을 주장한 것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우리 역사의 일대의 사건이라고 하며 극찬하기도 하였습니다.

솔깃한 인종은 서경으로 천도를 하고자 하였으며 서경에 대화궁이란 궁궐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개경의 기존 권력층들은 서경 천도 운동을 적극 반대하였습니다.

이에 인종은 서경 천도를 없던 일로 하였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묘청 일파는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 군대 이름을 천견충의군이라고 하며 난을 일으킵니다. 1년여 동안 난을 일으켰지만 개경파인 김부식에 의해 묘청의 난은 진압됩니다.

묘청의 난은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심화되었으며, 왕권이 약화되고, 결국 무신의 난까지 일어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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