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왕이야기>

고구려 22대왕 안장왕의 이야기입니다.

문자명왕의 장남인 안장왕은 이름이 흥안이었습니다. 

백제 개백땅(현재 고양시)은 한강일대를 지배하는 군사적인 요충지였습니다. 이곳은 고구려 땅이었는데 백제의 동성왕과 무령왕의 활약으로 고구려 땅인 개백(고양시)을 백제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아리따운 여인 한주를 만나다>

흥안은 늘 이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떡하면 개백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래 내가 직접 백제에 가서 개백의 상황을 파악해야겠어'

흥안은 이렇게 태자 시절 백제의 개백땅에 몰래 잠입하여 물건을 파는 보부상 행세를 하며 개백의 사정을 살피러 갔습니다. 그렇게 하루이틀 물건을 팔고 개백땅을 정탐하다가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오, 이렇게 예쁜 여인이 개백땅에 살고 있었다니..."

흥안이 한눈에 반한 그 여인의 이름은 <한주>였습니다. 흥안은 한주를 사랑하게 되고 한주도 그런 흥안이 싫지 않았습니다.

둘이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낮에는 보부상 흉내를 내며 개백의 이곳저곳을 살폈습니다. 시간이 어느덧 흘러 흥안이 고구려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때 흥안은 사실을 말합니다.

"한주, 난 고구려의 태자 흥안이요. 실은 백제에게 빼앗긴 개박을 되찾기 위해 염탐하러 이곳에 온 것이요. 신분을 감추고 그대에게 접근한 게 미안하오. 어쩔 수 없었소. 하지만 내 반드시 당신을 데리러 다시 올것이오. 그때까지 날 기다려 주겠소?"

그렇게 흥안은 고구려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한주의 미모에 반한 개백 태수가 한주에게 청혼을 합니다. 

"아니되옵니다. 저는 이미 정혼한 사람이 있사옵니다."

"뭐야! 그 사람이 누구냐?"

한주는 고구려의 태자가 정혼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태수는 자꾸 싫다고 하는 한주를 옥에 가둡니다.

그리고 태수의 생일날이 되었습니다. 태수의 생일 잔치는 거나하게 차려졌습니다. 악공들을 비롯한 광대패들이 분위기를 띄웁니다. 이때 태수는 한주를 불러냅니다.

"자! 지금도 내 청혼을 받아들일테냐? 아니면 죽음을 받겠느냐?"

"전 죽음을 받겠나이다."

"뭐라. 요망한 년. 여봐라. 저 년의 목을 쳐라."

<한주를 구출하다>

칼을 들고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한주의 목을 베려는 사람이 아니라 개백 태수를 노리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고구려 장군 을밀과 군사들입니다. 광대패로 위장하여 분위기를 띄우다가 한주를 구한 것입니다.

을밀도 개백에 오기 전 안장왕에게 한주를 구해오겠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성공하면 큰 상보다 안장왕이 여동생 안학공주와 결혼하고 싶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안장왕은 사내대장부다운 을밀이 한주도 구해오겠다고 하고,안학공주와도 혼인하고 싶다니 내심 너무 좋아했지요.

한주를 구한 을밀은 안학공주와 결혼하고, 안장왕은 한주를 고구려로 데려가 잘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장왕은 나중에 안타깝게 피살되었다고 하니 재위 기간동안 정치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왕후도 한주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안장왕 시기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가 없네요.

<춘향전의 모태가 되다>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사랑이야기인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춘향전의 모태가 안장왕과 한주 여인이라는 것을 저도 이 이야기를 읽고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춘향전은 안장왕과 한주 여인을 조선시대의 실정에 맞게 조금 다르게 꾸며 정리한 이야기인 것이라고 합니다.

챨리채플린 이후 최고의 코미디 명배우 짐캐리

캐나다에서 태어난 짐캐리의 가정형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정 경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짐캐리는 학교도 다 다니지 못하고 일찍부터 돈을 벌러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늘 쪼들린 형편에 짐캐리의 아버지는 의기소침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구점에서 뭔가를 사와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아니, 이게 뭐냐? 음. 천만달러 수표가 아니냐?"

"예. 아버지, 맞아요. 천만달러짜리 수표입니다. 비록 문구점에서 산 가짜수표지만 언젠가는 제가 천만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어 그때는 아버지께 진짜 천만달러 수표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너는 꼭 천만달러는 받는 명배우가 될거야. 나는 너의 재능을 믿는다. 그리고 아들, 이 수표는 네가 지니고 있어라. 배우가 되려면 많은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 수표를 꺼내보며 마음을 다 잡거라. 사랑한다. 아들."

짐캐리는 이날 아버지앞에서 천만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리라 굳게 다짐을 합니다.

미국 헐리우드로 가다.

그렇게 천만달러 배우라는 꿈을 안고 미국 헐리우드로 갑니다. 그리고 무작정 영화사를 찾아갑니다.

"무슨 역할이라도 좋으니 한번 맡겨봐 주십시오. 저는 잘해 낼 수 있습니다."

"저 사람 뭐야. 바쁜데 빨리 쫓아내!"

단역이라도 얻고 싶었지만 가는 영화사마다 그를 반긴 것은 문전박대였습니다. 천만달러 배우는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 것이 그의 현실이었습니다. 집이 없어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심지어는 공원에 누군가 먹다 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천만달러라는 배우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을 것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된 것은 그의 품안에 있던 가짜 천만달러 수표였습니다. 그것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시 고쳐 먹고 연기 연습에 매진합니다.

기회가 찾아오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nbc방송사에서 덕 패밀리 라는 프로그램 오디션에 참가합니다. 이 오디션에서 짐캐리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로드니 데인저필드였습니다. 그의 발탁으로 짐캐리는 덕패밀리의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 됩니다. 덕패밀리에서 젊은 만화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여 배우로 이름을 점차 알리게 됩니다. 그렇게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 언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이었지만 그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가짜천만달러짜리 수표였지요.

최고의 배우가 되다.

1994년 짐캐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한편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건 바로 <마스크>입니다. 은행원으로 일하는 평범하고 소심한 스탠리역을 맡은 짐캐리. 우연히 고대의 유물 마스크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 마스크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을 지닌 불사신이 됩니다. 이 소심하고 겁많은 은행원 역할과 초인적인 힘을 지닌 불사신의 상반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짐캐리의 연기력에 힘입어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합니다. 이 영화로 일약 최고의 배우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후 출연한 덤앤더머, 에이스벤츄라2에서도 다양한 표정연기로 대히트를 칩니다. 이렇게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가 된 짐캐리.

천만달러 배우가 되다.

어느 날 영화 배트맨 포에버의 계약이 있던 날. 배트맨 포에버에 캐시팅 되는 주인공은 짐캐리였습니다. 계약서에는 당당하게 천만달러의 개런티를 지급한다는 계약이 있었지요. 드디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하지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는데 벌써 가시다니요. 너무 늦게 약속을 지켜 죄송해요. 아버지...."

짐캐리는 관속에 천만달러를 아버지의 품속에 넣어 관과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천만달러는 옛날부터 지닌 천만달러인지 아니면 영화개런티로 받은 천만달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아무리 시련이 있더라도 그걸 헤쳐나갈 수 있는 실천력과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아들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아버지의 자세....전 이글을 쓰면서 아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었는지, 비난과 잔소리만 주었는지 반성하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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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낚시의 매력

작년 주꾸미 낚시에 푹 빠져 새벽부터 오천에 자주 갔었지요. 어떤 때는 갑오징어도 함께 잡는 재미가 있어 참 스릴 있습니다. 어느 날은 정신이 없을 정도로 약 250마리 잡는 날도 있었고, 몇 십 마리도 못잡는 공치는 날도 있었지요. 그래도 이런 손맛을 못 잊어 저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말이면 바다낚시를 가는 것 같습니다.

잡아온 주꾸미는 샤브샤브로 해서 먹습니다. 그날 잡아온 주꾸미를 저녁에 샤브샤브해서 먹으면 너무 싱싱하여 맛이 정말 끝내 줍니다. 샤브샤브 먹은 후에는 라면을 넣어 먹습니다. 배위에서 먹는 맛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매우 맛있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니 바다 낚시 인구가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바다낚시 하다가 기상 악화나 선박 고장으로 아찔한 경험을 한다고 하니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낚시인의 증가

전문가들은 낚시를 전문적으로 방영하는 텔레비전의 인기에 힘입어 올해는 100만명의 낚시객이 돌파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끊이지 않는 낚시배 사고로 낚시인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매일 바다로 나가야 하는 선주들이 낚시배를 대강대강 점검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합니다. 이런 안전 불감증은 언젠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선주들의 꼼꼼한 정비가 필요할 것입니다. 낚시배가 자신들의 소중한 재산인데 배가 고장나면 본인들의 손해가 아닐까요?

수영을 잘 못하는 저는 일단 낚시배를 타면 구명조끼를 걸쳐 입습니다. 물론 엄청 더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최소한의 나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기에 구명조끼를 입는 것입니다. 

안전과 환경을 위해

1. 구명조끼는 나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2. 씨알이 작은 것은 잡지 말고 놓아 줍시다. 

3. 쓰레기 좀 어떻게 해 봅시다. 바다 무단 투기 금지. 오염된 생선은 결국 우리 입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4. 배위에서는 맥주 1캔 정도만 먹읍시다. 더 먹고 싶어도 안전을 위해서 참아야 합니다. 담배 피고 바다에 담배꽁초 던지지 맙시다.

5. 루어낚시를 권장합니다. 납은 환경을 오염시킵니다.

6. 정원초과 금지

김용환이 누구일까요?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이 어렵게 살고 있는 모습이 매스콤에서 볼때면 가슴이 아립니다. 그들의 부모나 선조들도 잘 사는 집안이었을텐데 재산을 몽땅 독립운동에 쏟아부었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독립운동가 중 김용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사실은 저도 김용환 선생이 누구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을 알게 된 후 '와! 이런 분도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김용환은 1887년에 태어나 광복 이듬해 1946년에 돌아가십니다. 김용환은 어려서 착실했지만 어느 순간 흥선대원군처럼 파락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안을 말아먹을 놈이 나왔다고 수근거렸습니다. 퇴계의 제자이자 영남학파의 거두였던 김성일의 명문가 집안에 왜 저런 사람이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하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기간에 노름판에서 날밤을 새는 김용환.

노름판에서 재산을 탕진하던 김용환.

시집 간 딸의 돈마저 탕진

시집 간 외동딸이 시댁에서 받은 돈(농 살돈)을 가지고 노름판에서 탕진하여 외동딸은 큰어머니가 쓰던 헌 농을 가지고 신행길에 올랐을 정도로 노름에 미쳐 있던 파락호였습니다.

김용환은 노름을 이렇게 합니다. 노름을 계속하다가 노름이 파하기 직전 막판에는 승부수를 띄웁니다. 가지고 있던 판돈을 모두 걸어 노름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돈을 따면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집으로 가지만, 돈을 잃으면 한 마디를 외칩니다.

"새벽 몽둥이!!!"

그러면 그의 아랫사람들이 노름판을 덮쳐 판돈을 챙겨 유유히 떠납니다.

돈을 따면 조용히 떠나고, 돈을 잃면 노름판 판돈을 강탈해 가는 것이지요. 지금으로 말하면 완전 불량배, 깡패가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노름판에서 대대로 이어온 종갓집과 전답 등 전 재산을 다 날립니다. 아마 현재 시가로 200억~300억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1946년 한많은 이 세상과 작별을 합니다.

밝혀진 진실

그러나 그는 단순 노름꾼이 아니었음을 시간이 지나 밝혀졌습니다. 노름으로 탕진했다는 그의 재산은 만주의 독립군 자금으로 보내졌습니다. 일제의 눈과 귀를 속이기 위해 철저하게 노름꾼으로 위장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감시의 눈을 피한 후 독립군에게 자금을 보낸 것이지요. 

그렇다면 왜 그는 이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김용환이 어렸을 때 그의 할아버지가 사촌이었던 의병대장 김회락을 숨겨 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발각되어 왜경에게 온갖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김용환은 굳게 결심합니다.

  "나는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겠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습니다.

그가 세상과 이별하기 전 그의 오랜 친구가 말을 합니다.

 "이보게, 자네.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나? 이승의 짐을 풀고 가게나."

 "허허. 이사람아. 나는 조선의 선비야. 선비가 선비다워야지. 나는 선비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네. 너무 염려 말게나."

결국 이렇게 돌아가셨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그렇게 애쓰셨던 김용환은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얀 네포무크 신부와 왕비의 고해성사>

지난 번 카렐교(카를교)에 대해 포스팅했는데요.
얀 네포무크가 왕비로부터 어떤 고해 성사를 들었기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지켜주었을까요?
체코 프라하 성 앞 블타바 강위에 놓인 카를교...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붐비는 곳인데요. 관광객들이 카를교에 와서 꼭 하고 가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소원을 비는 일입니다. 바로 얀 네포무크의 조각상앞에서 소원을 빕니다. 그래서 얀 네포무크의 조각상 앞 동판은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이 동판은 얀 네포무크가 카를교 다리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새긴 것인데요. 얀 네포무크가 떨어지기 전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내 마지막 소원을 이 다리에 바치나니 이 다리에 선 자는 모두 소원을 이룰 것이다."

때는 1393년. 얀 네포무크는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알고 싶어하는 보헤미아 국왕인 벤첸슬라우스에게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얀 네포무크 신부, 말하라! 그날 왕비가 신부에게 무슨 고해 성사를 했는지 당장 말하라."
"전하.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고해성사 내용은 오직 하느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끝까지 왕비의 고해성사를 말하지 않은 얀 네포무크.

그렇다면 고해성사의 내용은 무엇일까?

왕비는 왕의 사랑을 받지 못했습니다. 늘 외로운 왕비.
"외로워 외로워 바람처럼 외로워. 서러워 서러워 ~~~"
그러던 어느 날 왕이 전쟁터로 나간 사이 왕비는 루드비크 장군과 사랑에 빠지고 맙니다.
왕비는 죄책감으로 이런 내용을 얀 네포무크 신부에게 고해성사하고 죄를 사면받고자 합니다.
얀 네포무크는 고해성사의 내용을 끝까지 비밀로 한다고 왕비에게 약속을 합니다.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누설하는 것을 엄히 금지하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왕은 전쟁터에서 돌아왔습니다. 그때 한 시녀가 찾아와 왕비와 장군과의 염문을 발설합니다.
하필 그 장면을 시녀가 본 것입니다.
"뭐라! 왕비가 그런 일을...그 장군이 누구냐?"
"전하. 뒷모습만 봐서 어떤 장군인지 잘 모릅니다."
"이런 요망한 것. 만약 거짓이라면 넌 목숨을 잃을 줄 알아라."

왕비의 비밀을 알게 된 왕은 크게 분노하며 왕비를 다그치지만 왕비는 전혀 그런일이 없다고 해야 되겠지요.
왕비는 안그랬다고 하고 그러니 시녀를 고문하고 처형합니다.
왕은 그래도 왕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왕비가 고해성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얀 네포무크 신부를 모진 고문을 하며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라고 다그칩니다.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고해성사 내용을 말하지 않는 얀 네포무크...
이성을 잃은 왕은 이제 얀 네포무크를 묶어 카를교 아래 블타바 강으로 던지라고 하였습니다.

그후 얀 네포무크는 고해성사의 비밀을 지키고자 목숨까지 버린 순교자.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수호자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얀 네포무크가 처형당한 카를교 난간에 십자가 표식을 만들었고 동상을 카를교에 세웠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데요. 얀 네포무크 동상앞에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아마 얀 네포무크가 다리에서 떨어지기 전에 한말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금도 이 다리에 가면 얀 네포무크의 동상 앞에서 동판을 만지며 소원을 빌고 있습니다.
저도 우리 가족의 건강을 빌고 왔는데 이루어 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보라카이 해변이...

보라카이와 발리 해변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를 보았다. 예전 보라카이 갔던 기억이 떠 오른다. 한밤중에 도착하여 한참을 자동차타고, 배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깔리보공항도 기억이 생생하다. 도대체 이게 공항인지 버스대합실인지... 국제공항이 너무 허접해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시설 투자 좀 했으면 하는 공항이다.

기사의 내용은 필리핀 보라카이, 인도네시아 발리의 해변에 쓰레기 문제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위험하다고 한다.

인기 휴양지인 보라카이가 어떻게 이지경까지 되었을까? 지금도 그 하얀색 바다와 모래사장, 그리고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며 공연하는 것을 관람하며 유유자적하던 것이 생각난다. 그렇게 아름다워 또 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얼마나 많은 쓰레기가 있어서 그럴까?

두테리테 대통령이 비상사태 선언할 수도...

필리핀의 두테리테 대통령은 쓰레기 문제로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도 있다고 강도높게 대책을 세우라고 이야기 한다. 섬주민과 관광산업 종사자들이 환경정화 작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보라카이의 관광산업을 중단시키겠다고 신속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한다면 하는 사람이라 보라카이 관광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대책을 세울 것 같다. 그리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환경교육 실시 및 관광객들의 몰지각한 쓰레기 투기 행위가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발리도 쓰레기 문제 심각...

발리도 마찬가지로 각종 플라스틱 병, 비닐 등 쓰레기가 뒤덮인 곳에서 물고기들이 그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발리 쓰레기도 발리에서 버린 것과 먼 바다에서 흘러 들어온 것 등이 아름다운 해변의 경관을 해치고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발리에도 뭔가 특별한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아름다운 우리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쓰레기 재활용을 위한 분리 수거, 쓰레기 무단 투기 금지, 관광지에서는 자기 쓰레기 집으로 가져가기 등 생활속에서 작은것부터 실천하여 모두 환경지킴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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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국 시내교통 이용시 사용하는 오이스터(Oyster Card)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1월 12일부터 영국 여행을 하고, 19일 체코 프라하로 갔지요.
문제는 영국 런던에서 딸이 2층버스를 처음 보고 너무 타고 싶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직접 눈앞에서 이층버스를 보고 신기했는가 봅니다.

2층버스 지나갈 때 찰칵


그런데 우리들은 이미 여행 스케줄이 있고, 또 현지 가이드와 2번의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18일에 한 곳을 가지 않고, 버스를 타기 위해 가까운 워털루 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샀습니다.
보증금 5파운드, 충전금 5파운드 총 10파운드 입니다.
4인 가족이니 40파운드가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버스를 타고 런던탑으로 가려고 올라 탔으나 아! 이런 버스를 잘못타는 바람에 반대편으로 가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탄 버스이니 2층으로 올라가 맨 앞좌석에 앉아 딸에게 "기분 어떠니?"라고 물으니 좋다고 신기하다고 하며 좋아하더라구요. 그런데 버스는 자꾸 반대편으로 가니 어쩔 수 없이 몇 정거장 간 다음에 내렸지요.
그곳에서 우버 불러서 런던탑으로 관광 잘 했습니다.

런던탑의 건물들



런던탑에서 바라본 타워브릿지


런던 타워는 1066년에 착공한 건물로 1100년부터는 주로 귀족이나 왕족들을 가두는 감옥이나 사형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구요.
입장료는 60인가 70파운드 들어간 것 같습니다.(4인가족)

그 다음날 우리 가족은 체코로 넘어가기 위해 아침부터 짐을 다시 정리하고, 오이스터 카드 환급받으려고 워털루 역으로 갔습니다. 보증금 20파운드와 사용하지 않은 충전금 12파운드 총 32파운드를 환급하려고 카드를 티켓머신에 댔는데 환급 관련 로고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되어 옆에 있는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하루가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아! 이런....여행 책자에는 환급받을 수 있다고만 나왔지 24시간 지나야 환급받을 수 있다는 말은 없어서 당연히 되는 줄 알았는데...비행기 시간에 맞춰 가려면 우버 타고 빨리 공항으로 가야하는데....
어쩔 수 없이 기념으로 가져와 버렸습니다.

오이스터 카드 4장


혹시 영국에서 오이스터 카드를 사서 대중교통을 이용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은 환급받을 수 있도록 미리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영국은 너무 좋았습니다. 물가가 다소 비싼 것과 우버 값도 조금 비싼 것이 흠이지만 런던은 또 가고 싶네요. 그때 오이스터 카드 사용할까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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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교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부터 약 1000년 넘게 이어진 체코의 수도로 중세 건축물이 잘 보존된 도시로 모차르트가 매우 사랑했던 도시라고 합니다. 또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였지요. 

신성로마제국은 독일오스트리아, 체코 등 유럽 중앙의 큰 나라였습니다이렇게 큰 나라의 수도를 카렐 4세가 프라하로 정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프라하의 시민들은 아직도 카렐 4세 시대의 프라하를 프라하 역사의 가장 황금기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천년의 도시 프라하의 명소 중 하나인 카렐교

블타바 강 위로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인 카렐교를 소개합니다.

 


카렐교는 블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길이 약 500미터넓이 약 10m 정도 되는 중세 시대 석조 다리입니다옛날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렐 4세의 이름을 따서 카렐교라고 부릅니다. 1357년 카렐 4세가 만든 다리인데 1402년 바츨라프 4세 때 완공됩니다.

프라하 성과 구 시가지를 이어주는 다리로서 늘 관광객으로 붐비는 다리이니 소매치기 조심해야지요저는 구 시가지 근처에 숙소를 잡았던 관계로 걸어서 얼마 안 걸리는 곳이기에 이곳을 3번 갔네요갈때마다 다리 위에는 거리의 악사예술가동냥하시는 분관광객들 등 늘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동양사람들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더라구요. 한국사람들 엄청나게 많이 옵니다. 아마 도시가 너무 예쁘고 중세적인 건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런가 봅니다. 또 드라마에서도 소개가 많이 되어 더 많이 찾는가 봅니다.

 


다리 위에는 조각상이 좌우에 각각 15개씩 모두 30개가 있습니다여러 개의 조각상 중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얀 네포묵(얀 네포무크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입니다전설에 의하면 얀 네포묵은 바츨라프 4세의 왕비의 고해 성사를 들었다고 합니다바츨라프 4세는 왕비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왕비가 어떤 내용의 고해 성사를 했는지 알려달라고 합니다하지만 신앙심 깊은 얀 네포묵은 그 청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그러자 왕은 온갖 고문과 협박을 합니다그러다가 왕이 성직자를 죽였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얀 네포묵을 묶어 블타바 강에 던졌습니다죽음으로서 종교적인 신념을 지킨 얀 네포묵.

동판위에 새겨진 강위로 떨어지는 얀 네포묵별을 함께 만지며 소원을 빌면 그 행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소원과 행운을 빌며 만졌는지 그 부분만 맨질맨질하게 변했습니다.


 이제 구시가지 앞에 이르는 교탑앞에 이릅니다이곳은 30년 전쟁에서 스웨덴 군대를 막아냈던 격전지라고 합니다이 곳에서 왼쪽을 보면 동상이 보입니다바로 카렐 4세의 동상입니다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재위기간동안 프라하를 유럽의 중심도시로 탈바꿈 시킨 인물이지요이곳에서 프라하 성과 블타바 강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면 모두 예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탑 주위에는 제복을 입고 유인물을 나눠 주는 사람들(흑인들이 많지요)이 있던데 이 사람들은 유람선 탑승을 안내하는 사람들입니다. 교탑 바로 밑에 유람선이 있으니 유람선도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카렐교 교탑>


<카렐 4세 동상>


<카렐교 교탑과 카렐 4세 동상을 한꺼번에 찰칵>


<카렐 4세 동상 바로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프라하 성, 블타바 강, 카렐교 모두 담을 수 있네요.>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 <007 시리즈>

총 24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남자 배우들 모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21번째 007시리즈에서 본드걸 여배우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 촬영을 시작해야하는데 여주인공인 본드걸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섭외하고자 하면 여배우들 모두 하나같이 거절을 했다. 당대 최고 인기 영화인 007에 출연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상하게도 모두 거절을 했다.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본드걸의 저주에 걸리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본드걸의 저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007 시리즈에 본드걸로 출연한 여배우가 다음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쓸쓸히 영화계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1962년 최초의  007시리즈 제1탄이 제작되었다.  <007살인번호>에 출연한 우슬라 안드레스(1대 본드걸)은 육감적인 몸매를 한 배우였다. 영화의 장면에서 하얀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이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그녀가 입었던 하얀 비키니 수영복은 세계적으로 히트되었다. 하지만 1대 본드걸로서 엄청난 인기와 관심을 끌었던 우슬라 안드레스는 007영화 이후 총 12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쓸쓸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멀어져갔다.

1998년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에 달하는 본드걸들이 007영화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007 영화가 끝난 후에는 출연하는 영화의 흥행실패로 몰락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드걸의 몰락을 본드걸의 저주라고 불렀다.

 그동안 영화사에서는 제작비 등의 이유로 육감적인 몸을 가진 신인배우들을 본드걸로 캐스팅했었다. 그래서 본드걸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를 물색하여 캐스팅하고자 했다.

그래서 1998년 이런 저주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연기력이 검증된 당대 프랑스 출신 최고의 여배우 <소피마르소>를 본드걸로 영입한다.(한참 책받침이나 코팅된 사진을 문방구에서 팔았던 기억이 난다.)

청순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던 소피마르소를 <007 언리미티드>의 본드걸로 캐스팅 한 것이다. 영화는 대 성공이었다. 그래서 소피마르소에게 다음 작품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이렇게 본드걸의 저주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소피마르소도 본드걸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음으로 출연했던 영화들 모두 흥행에 참패하고 만 것이다. 

이제 누가 본드걸을 하려고 할까? 모두 기피하고 있던 찰나 할리베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흑인 여배우로 200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흑인 최초로 수상한 배우였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여배우가 찾아와 자신이 본드걸 역할을 잘해낼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녀는 007시리즈 제 20탄 <어나더데이>에 출연하게 된다. 이 007 영화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할리베리는 또 다른 대작 영화<엑스맨2>, <캣우먼> 등 2편에 단독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다. 엑스맨이나 캣우먼은 대작으로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대작품이었다. 이렇게 저주는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모두 흥행 실패로 끝난다.

2005년 21번째 007 시리즈 영화 만들려고 하는 데 희망하는 여배우가 없다. 안젤리나 졸리 등 모든 여배우들이 본드걸의 저주란 이유로 출연 거부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신인 에바 그린이라는 여배우가 맡게 된다. 하지만 에바 그린 역시 007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나 마땅한 흥행작 없이 주목받지 못하고 말핬다.

2015년 <007 스펙터>까지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본드걸은 저주가 있을지 아니면 깨트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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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오늘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탐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숙소는 워터루 역 근처의 아파트로 템즈강을 건너서 약 3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더라구요.
구글 지도를 켜고 천천히 영국 런던의 경관을 구경하며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조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조깅하는 사람들 대부분 운동복을 바르게 갖춰 입고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육상 종목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강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템즈강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가다 보니 공사중인 빅벤도 보이고 공원에는 처칠 등 여러 위인들의 동상들이 보였습니다. 동상들이 있는 조그만 공원 바로 앞에 드디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으로 역대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종교 개혁기를 거쳐 성공회 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과 그 아들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열린 장소로도 유명하지요.
또 우리와는 맞지 않게 시신을 성당 내부에 안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 곳곳에 여러 영국 왕들과 왕비, 과학자 등의 무덤이 있습니다. 시신을 자꾸 안치하다보니 실내가 조금 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의 무덤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피의 메리1세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메리 1세입니다.)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는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서로 경계하는 사이였습니다. 메리 1세는 결혼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급기야 반란군에게까지 패하여 폐위당하고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하지만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를 칼라일 성에 감금하고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중부에 있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자 메리의 아들 제임스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혀 있던 어머니 메리 1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장하여 엘리자베스 1세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게 대리석으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사원의 아쉬운 점은 실내에서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원의 정문 바로 앞에서 우버를 부르면 10여분 내로 도착하니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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