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가 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메탈리카와 메가데스가 이야기가 있다고 하며 책을 권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제가 제일 좋아했던 그룹이 메탈리카였기 때문에 후배는 제가 생각났다면서 문자를 보내 왔습니다. 대학교 재학 시절에 취미로 그룹사운드에 들어갔는데 이내 저는 메탈리카의 음악에 흠뻑 빠져 버렸습니다. 그동안 듣지 못한 기타의 웅장함, 베이스, 드럼, 보컬 모두모두 좋았습니다. 특히 저는 너무 시끄러운 헤비메탈보다는 약간 느리면서도 애절한 기타 독주가 있는 슬로우 메탈이 더 좋아하지만 메탈리카 사운드는 뭔가 나를 이끄는 매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룹사운드 발표회 시 꼭 메탈리카 음악을 1~2곡씩 연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치는 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쭉 기타를 쳤어야 하는데 직장 잡은 후에는 별로 기타를 칠 일이 없었고, 또 한곡을 연습하려면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꾸준히 연습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시간도 없다보니 지금은 일주일에 1번 정도 기타를 잡는 것 같습니다.

 메탈리카 음악을 듣던 저는 어느 날 휴게소에서 파는 CD에서 "Symphony of Destruction"이라는 노래가 들려왔습니다. 저 노래는 기타 소리는 좋은데 노래가 영 이상해서 어떤 가수인가 봤더니 메가데스였습니다. 기타 소리가 그냥 좋아서 구입하여 차에서 계속 들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후배가 메탈리카에서 퇴출되어 나온 사람이 메가데스를 만들었다고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어허! 그 책 재미있겠는데 생각하고 바로 서점에 가서 책을 사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목차를 보니 97쪽에 그 내용이 있어 그 부분부터 읽었습니다.  97쪽에는 <메탈리카에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남자> 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읽어 보니 내용은 대강 이렇습니다.

  음반 제작을 위해 첫 녹음을 하기 직전 밴드는 기타리스트 데이브 머스테인을 쫓아냈습니다. 머스테인은 '뭘 잘못했지! 아, 음반 제작이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뚝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달랑 버스표 한장을 들고 쫓겨난 그는 자신을 쫓아낸 멤버들에 대한 복수를 다짐합니다. 

'너희들이 후회하도록 만들어주리라. 너희들은 날 쫓아낼 것에 대해 눈물로 목욕을 하리라.'

 한동안의 방황을 끝내고 머스테인은 악마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작업에 몰두하여 2년 뒤 마침내 음반을 제작합니다. 음반은 약 50만장이나 팔렸습니다. 이 밴드가 바로 메가데스입니다. 메가데스는 이후 열심히 음악 활동을 하며 음반을 2500만장 이상을 팔았습니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이렇게 승승장구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바로 그를 쫓아낸 밴드가 메탈리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메탈리카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팬들을 확보하며 1억 8000만장 이상 앨범을 팔았습니다. 이 사실에 머스테인은 여전히 자신은 실패자라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기준이 바로 메탈리카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가 기준을 자신과 자신의 음악이었다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인데 메탈리카와 비교했기 때문에 여전히 실패자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엄청나게 돈을 벌고 수많은 팬들이 그를 영웅시 해도 여전히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어디에 가치를 둘 것인지, 그리고 어떤 기준으로 실패와 성공을 가를 것인지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피뢰침과 다초점 렌즈 등을 발명한 발명가입니다. 또한 미국을 건국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정치가이면서 발명가, 그리고 신문사까지 경영한 언론인입니다. 이렇게 여러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한 사람이기에 미국 달러화에 그의 얼굴이 새겨졌습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행복한 인생을 보냈습니다. 내적으로도 행복하고, 외적으로도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이렇게 행복한 인생을 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벤저민 프랭클린 스스로 정한 13가지 덕목에 있었습니다. 13가지 덕목을 단순히 선정한 것이 아니라 평생동안 자신의 수첩에 항상 기록하고, 잘 실행했는지 실행하지 못했는지 끊임없이 확인했습니다. 또 버츄카드처럼 일주일마다 13가지 덕목 중 한가지를 골라 그것을 집중적으로 실천하고자 노력했고, 늘 실천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이런 습관이 있었기에 그는 늘 행복하고 만족스럽고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 벤저민 프랭클린의 13가지 덕목은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절제: 과식과 과음을 삼갑니다. - 저는 과식을 가끔 하는데, 먹고 나면 후회를 합니다. 속이 거북하고 힘이 듭니다. 과음은 거의 하지 않지만 1년에 1~2회 정도 하고 있습니다. 음주도 하고 나면 그 다음 날 후회 막심입니다. 그래도 절제 덕목을 비교적 잘 지킵니다.

2. 침묵: 타인과 자신에게 이로운 것 외에는 말을 삼가고, 쓸데없는 대화를 피한다. - 저는 쓸데없는 대화를 잘 하지 않으니 이것은 잘 지키는 것 같습니다.

3. 질서: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정돈하고, 모든 일은 정해진 시간을 지킨다. - 물건 정리가 잘 되지 않아 말만 정리해야지 하고, 행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물건을 제자리에 잘 정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도 잘 지키지 못하고 계획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4. 결단: 해야 할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결심한 일을 반드시 행한다. - 결단은 잘 내리는 편이지만 그 결단에 대한 행동을 꾸준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나중에는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아 결단 덕목을 잘 지켜야 되겠습니다.

5. 절약: 타인과 자신을 이롭게 하는 것 외에는 지출을 삼가고, 낭비하지 않는다. 쓸데없는 지출을 삼가야 하는데 충동구매를 가끔 하고 있습니다. 낭비벽은 없지만 값비싼 물건을 아무 생각없이 충동구매하고서 후회하는 경우가 있어 반성합니다.

6. 근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유익한 일을 모색하고 쓸모없는 행위는 끊어 버린다. - 근면한 행동을 하고 있지만 유익한 일을 모색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좀더 인생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겠습니다.

7. 진실: 사람을 속여 해치지 않는다. - 이것은 거의 하지 않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사람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8. 정의: 남에게 해를 주지 않으며 해로운 일을 해서도 안 된다. - 남에게 해를 주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으니 이것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로운 일도 거의 하지 않고 있습니다.

9. 중용: 생활의 균형을 지키고 화내지 않으며, 관용을 베푼다. - 아! 이것은 많이 반성해야 할 듯 합니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화를 내면서 했던 행동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저도 아들에게 가끔 화를 냅니다. 자꾸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어 화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관용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0. 청결: 몸과 의복, 주변을 불결하게 하지 않는다. -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냄새가 난다고 하던데 저는 몸과 의복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생활을 하니 이것도 잘 지키고 있습니다.

11. 평정: 하찮은 일, 피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평정을 잃지 않는다. - 평정심을 갖는 것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제가 평정심을 잃으면 엉뚱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될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12. 순결: 자신이나 남의 평안과 명성을 흐리거나 해칠 행동은 하지 않는다. - 남의 평안이나 명성을 해치려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은 이것도 잘 지키고 있는 편입니다.

13. 겸손: 예수나 소크라테스를 본받는다. - 종교는 천주교이지만 성당에 나가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생활태도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프랭클린이 미국 사람이라 소크라테스가 나온 것 같은데, 아마 동양 사람이라면 공자나 맹자를 본받는다 라고 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위해 싸웁니다."

 2018년 3월 31일 청주 충청대학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TFC드림5' 메인이벤트에서 한국의 장정혁(20) 선수와 일본의 4승 무패의 신예 천재 파이터 니시카와 야마토(17)와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니시카와는 미래의 챔피언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특급 파이터입니다. 경기 전 많은 전문가들이 니시카와의 승리를 예상하였습니다. 전문가들의 예상한 대로 장정혁 선수는 니시카와 선수에게 펀치를 많이 허용하여 매우 힘든 경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니시카와의 강한 펀치가 장정혁 선수의 얼굴을 강타하였습니다. 다리가 풀릴 정도의 강펀치였습니다.

장정혁 : '우! 여기서 지면 나는 끝이다. 지금 내 뒤에는 인민군이 쫓아오고 있다. 여기서 잡히면 나와 어머니는 또 감옥에 가야 한다.'

누가 봐도 장정혁 선수의 패배가 예상되는 순간 장선수는 있는 힘을 다해 상대에게 저돌적으로 돌진하였습니다. 그렇게 돌진하다 뻗은 강력한 돌주먹이 니시카와 선수의 얼굴을 때렸습니다. 니시카와 선수는 충격으로 넘어져 뒤구르기로 위기를 모면하려 했지만 이미 데미지를 입은 상태라 장선수의 강력한 펀치 세례를 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연속적인 펀치로 프로 데뷔전에서 역전 KO승을 거두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집고 얻어낸 데뷔전 승리라 의미가 더 컸습니다.

장정혁: 저는 한번 목숨을 걸어봤기 때문에 니시카와 펀치 정도는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 온성이 고향인 장정혁 선수는 먹을 것이 없어 어머니와 죽음을 무릅쓰고 중국땅으로 탈북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나이가 고작 12살이었습니다. 중국에 도착한 낯선 곳에서 그를 맞이한 것은 차별과 괴롭힘이었습니다. 그럴수록 자신이 강해져야만 엄마를 지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헌옷과 페트병에 물을 넣은 샌드백으로 매일 훈련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중국 공안에 잡힐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또 다시 탈출을 합니다. 브로커를 통해 어렵사리 태국으로 탈출하지만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감옥생활을 합니다. 그 감옥에는 흉악범들이 있어 매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달 만에 석방되어 한국으로 오게 된 장선수는 새로운 터전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도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전찬열 감독의 눈에 띄어 본격적인 파이터로서 거듭나게 됩니다. 전찬열 감독의 가르침,  장선수의 절심함과 성실한 훈련이 프로데뷔전 KO승이라는 열매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가끔 힘들고 어려울 때는 주저앉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 탓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 탓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장정혁 선수의 시합 모습과 그가 살아온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렇게 어린 선수가 자기가 좋아하는 운동을 하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장정혁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고 늘 어머니와 함께 더욱 행복한 생활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야생마 장정혁 선수! 파이팅. 전찬열 감독님도 파이팅. 

 


빌 포터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뇌성마비를 안고 태어났으며 말이 어눌하고 오른쪽 팔도 불편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 얘야, 이젠 너도 취직을 해야 되지 않을까? 영업직에 한번 도전해 보지 않으련?


: 말도 어눌하고 느린 발걸음에 팔도 불편한데 어느 회사가 저를 쓰려고 할까요?


어머니: 도전하고 도전하면 반드시 이룰 수 있을것이야!


어머니는 빌을 데리고 여러 회사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빌의 겉모습을 보고 단칼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생활용품 회사였던 <왓킨스>사를 또 찾아갔습니다. 물론 왓킨스 사에서도 그의 모습을 보고 필요없다고 하며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해서라도 그는 더이상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빌: 저를 써 주십시오. 그리고 가장 힘든 지역으로 보내 주십시오.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는 곳으로 제가 가겠습니다. 성실히 일하겠으니 저를 믿어 주십시오.


어눌한 말투로 <왓킨스> 사의 인사팀에 진심을 다해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의 의지에 감동한 회사는 빌 포터를 영업사원으로 고용합니다.


빌: 엄마, 저 드디어 취직했습니다.


빌의 엄마: 그래, 장하다. 내 아들. 영업사원은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고 또 인내해야 한다. 


드디어 영업직 사원으로 첫발을 내디딘 빌 포터. 첫번째 집을 방문합니다. 


빌: 저는 왓킨스 사의 영업사원 빌 포터입니다. 질 좋은 왓킨스 사의 생활용품을 소개하려고 하는 데 시간 괜찮으신지요.


어떤 사람: 뭐야 이사람. (쾅 문을 닫는다)


어떤 사람의 부인: 누구야?


어떤 사람: 누군가 구걸하러 왔어.


이렇게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를 맞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의 행동에 동정을 표하며 돈을 주려고 합니다.


: 저는 동정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당당히 물건을 파는 영업사원입니다.


하루하루 힘들게 돌아다녀도 실적이 없습니다. 점심은 어머니가 싸 주신 샌드위치를 먹곤 했는데 그 빵위에 인내라고 글을 써서 도시락을 싸주셨습니다.


빌: '그래, 참고 참고 또 참고 끝까지 인내하는 거야.'


빌은 어머니가 있어서 그렇게 힘든 나날을 버티며 실적도 없는 영업일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항상 일이 끝나면 빌을 데리러 왔던 어머니가 전화도 없고 밤 늦게까지 보이지 않습니다. 빌은 도대체 어머니가 왜 오시지 않는지 생각하며 겨우 겨우 집으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가서 보니 아무도 없습니다. 조금 있다가 경찰 차가 집앞에 서더니 어머니를 모시고 옵니다. 


빌: 엄마, 어디 다녀 왔어요? 왜 전화도 없었어요. 그리고 저 경찰은 왜....


빌의 엄마: 워싱턴가에 갔다 왔어. 구두 사려고....


빌: 거기에는 구두를 팔지 않잖아요. 왜 전화하지 않았어요?


빌의 엄마: (탄식하며) 그래, 빌. 아무래도 내 몸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 같아. 네 전화번호가 전혀 생각나지 않아 전화하지 못했어. 그래서 경찰이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준거야. 너를 보살펴야 하는데.....


  이젠 빌은 어머니의 도움 없이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업에 최선을 다하며 자기 자신을 혹독하게 대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였더니 드디어 물건을 팔 수 있게 되었습니다. 거의 매일 손님을 찾아가 물건을 설명하는 빌의 성실함을 알아보는 고객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빌은 손님들이 거절하면 그것은 거절이 아니라 '더 좋은 상품으로 다시 와달라는 신호'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그들을 다시 찾아가 상품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빌 포터의 이런 영업 생활은 24년간 계속 이어졌습니다. 인내하며 인내하는 24년의 세월입니다. 


왓킨스 사장: 이 분이 우리 회사에 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올해의 영업왕 빌 포터를 소개합니다.


 오른손을 쓸 수 없어 왼손으로 무거운 가방을 들고 다니며 매일 15km를 걸으며 영업을 했던 빌 포터. 수 많은 고객을 찾아다니며 감동을 줬던 그의 성실함과 인내력이 그에게 영업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져다 준 것입니다. 왓킨스사에서 아직도 깨지지 않는 그의 영업실적, 느린 발걸음과 불편한 손이었지만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며 영업을 했던 그의 삶은 우리에게 다음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끝까지 인내하라>




체코 구광장에 있는 얀 후스의 동상


여기 관광하면서 사진만 찍었지 저게 누구의 동상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와서 다시 체코 관광 책을 보니 그게 바로 얀 후스의 동상이더라구요. 

관광할 때에는 사전에 더 많이 공부하고 가야 되고, 관광 후에는 여행한 곳의 사진을 다시 보면서 복기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얀후스는 체코의 신학자입니다. 성직자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성경을 유일한 권위라 주장했던 체코의 종교개혁가입니다. 존 위클리프는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지만 얀 후스는 체코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얀후스는 1369년 체코 보헤미아 후시네츠 지역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좀더 안정적인 생활을 원했던 얀후스는 성직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프라하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프라하 대학에서 교수가 되었으며 학장과 총장까지 역임합니다. 그러다가 영국의 종교개혁가 위클리프의 저서를 접하면서 종교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교회의 참 머리는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요, 교회의 법은 신약성경이요, 

교회 생활은 그리스도와 같은 청빈의 생활이어야 한다.>

고 주장하며 로마 교황청에 정면 도전했습니다.

성 만찬 예식을 할 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성도들과 포도주를 함께 나눠 마시는 등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완전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체코 개신교의 상징이 십자가가 아니라 성배인 것도 얀후스에서 유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얀 후스의 행동에 정말 화가 많이 나겠지요. 

얀후스가 이런 말을 합니다.

<나의 목적은 하나님이 내게 알려주신 진리, 특별히 거룩한 성경의 진리를 죽기까지 지키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영원히 전능하게 서 있으며 영원히 전능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얀 후스는 성경의 진리를 선포하다가 1411년 얀 후스는 설교 금지령을 당합니다. 성직자였는데 이제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자신도 악당과 같은 사람들에게 파문당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형편 없이 사는 것보다 진리를 찾다가 잘 죽는 것이 낫다.>

얀 후스에게 성경의 진리는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또 얀 후스는 그 당시 교황권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1. 교황무오설-카톨릭에서는 교황을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사도권을 계승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 봅니다. 따라서 교황에게는 잘못이 없다라는 주장입니다.  이것은 성경적이지 않다라고 합니다.


2. 고해성사 - 이것도 성경적이지 않다.


3. 상급자인 성직자에 대한 복종 - 이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4. 성직자의 독신 - 이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5. 면죄부 - 이것도 성경적이 아니다. 


이렇게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고 나오는 얀 후스를 콘스탄츠 공의회에 소환하여 화형을 선고 받습니다. 그리하여 얀 후스는 화형에 처해집니다.

화형에 처해 지기 전

<너희가 지금 거위(후스)를 불태워 죽이지만 100년 뒤 나타난 백조는 어쩌지 못할 것이다.>

라고 말하며 102년 후 루터가 종교개혁의 불꽃을 피울 것을 예언합니다.



구 광장에 얀 후스 동상과 함께 있는 틴성당입니다. 얀 후스 동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바로 그가 생전에 진정한 신앙과 보헤미아 민족정신을 일깨우며 설교했던 틴성당입니다. 

위클리프에 있어서 참된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다.

위클리프가 생각한 참된 교회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다.


14세기 로마카톨릭은 조직화, 체계화되면서 종교를 뛰어넘어 정치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모든 권위를 갖게 된 교회는 두려울 게 없을 정도로 세를 확장합니다. 성경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데 교회는 부패와 타락이 있었습니다.

이런 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맞서 최초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인 존 위클리프입니다. 종교 개혁의 새벽별이라고 불리우는 존 위클리프는 1329년 영국 요크셔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옥스포드 발리올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철학과 신학을 연구하였습니다. 

1370년 그는 점차 급진적인 종교적인 주장을 합니다. 성찬의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화체설의 교리를 부인하고, 성경과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또 교황에 대한 직위는 성경 어느 구절에도 정당성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십자군 전쟁 후 이 전쟁을 주도했던 교황의 권위가 몰락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303년 아나니 사건입니다.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필리프 4세가 교회에 세금을 부과하자 교황 보니파시우 8세가 반발합니다. 그러자 필리프 4세는 교황의 별궁인 아나니성에서 교황을 납치하고 유폐시킵니다. 곧 3일만에 풀려났지만 교황은 죽게 됩니다. 그후 교황은 프랑스 국왕의 간섭을 받으며 새로운 교황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됩니다. 이제 교황은 원래 교황청이 있던 로마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국왕은 교황에게 로마로 돌아가지 말고 프랑스 아비뇽에 있으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아비뇽에 새로운 교황청이 생긴겁니다. 그러니 교황의 권위가 땅으로 떨어진 것은 말할 나위 없지요. 1307년부터 1377년까지 교황청이 아비뇽에 있던 기간을 <아비뇽의 유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1377년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은 로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듬해 선종합니다. 이제 새로운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있었습니다. 콘클라베는 새로운 교황을 뽑는 선거 시스템을 말합니다. 교황이 새로 뽑히면 굴뚝에서 하연 연기를 피어 오르게 하고, 교황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을 때는 검은색 연기를 피어 오르게 합니다. 이 콘클라베에서 우르바노 6세가 교황이 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콘클라베는 무효라고 하며 아비뇽에 새로운 교황을 세워 <대립 교황>을 선출합니다. 이로서 로마와 아비뇽 두 곳에 교황이 2명 존재하며 교회의 극심한 혼란이 야기됩니다.


존 위클리프는 교황권이 분열되자 교황권이 분열되는 전조 현상이라고 환영하였습니다. 이렇게 당시로서는 말하기 어려운 것을 주장하자 옥스퍼드대학에서는 그를 내쫓아버렸습니다.


그의 모든 행동의 근원은 성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국민들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의 생애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노력했던 것이 성경번역 이었습니다. 

이 당시 성경은 라틴어로 되어 있어 일반 국민들이 읽고 이해하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라틴어 성경은 사제들만 독점되었고, 성경을 알고 싶으도 집에서 공부할 수 없으니 교회에 나와서 사제들의 성경말씀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지요.

그리하여 일반 국민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라틴어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이 최초의 번역본 위클리프역 성경입니다.

이 당시 교황의 권위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타락과 세속화에 빠진 교회를 개혁하고자 교황과 맞서 싸운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발화점이 된 사람 위클리프의 생각은 체코의 얀 후스와 독일의 루터에게 자연스럽게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존 위클리프는 이런 말을 합니다.

<교회의 유일한 머리는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예수를 따르지 않는 교황은 적 그리스도이다.>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최초의 사람이고 종교개혁의 발화점이었던 존 위클리프는 성경 말씀을 전하고자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고난 44년 후 시신이 다시 꺼내져 부관참시를 당하게 됩니다. 시신을 화형 시킨 후 남은 재를 강에 버린 것인지요. 


위클리프를 포스팅하면서 교회에 경종을 울리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위클리프는 교황과 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부를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오늘날 우리 나라 극히 일부의 교회를 보며 위클리프의 주장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링고스타 경이 되다>


오늘 신문을 보니 비틀즈의 링고스타(드럼 담당)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작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폴 메카트니, 존 레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들의 인기도는 낮았지만 비틀즈의 음악은 그의 드럼에서 사운드가 완성된다는 것은 재론할 여지가 없습니다.

1965년 비틀즈는 이미 대영제국의 훈장을 받았습니다. 폴 메카트니도 기사작위를 받았습니다. 기사작위를 받으면 경(Sir)이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링고스타가 아니라 링고스타 경 이라고 불러야 마땅하겠지요.


지난 번 포스팅에서 헤이 주드는 폴 메카트니가 존 레논의 아들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라고 했는데요. 이번에는 두 사람의 또 다른 음악적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영국 리버풀에서 1962년 정식으로 결성된 비틀즈. 그런데 1961년 데뷔를 위해 연습하던 중 베이시스트인 스튜어트가 돌연 팀에서 나가버립니다. 이 당시 베이스라는 악기는 곡에서 없으면 음악이 허전하고, 있어도 크게 조명을 받지 못하는 악기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베이스는 둥둥거리다가 연주하면서 졸음이 오는 악기라고도 이야기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처럼 베이스가 멋있게 뚱땅거리면 상당히 인기있는 악기이지만요. 정말 어쩌다 마주친 그대가 발표된 이후 동네 음악 학원에는 베이스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두서너배로 늘었다고 합니다. 또 헤비메탈 그룹 아이언메이든의 곡 대부분이 베이스 연주가 현란합니다.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음악적 갈등>

  베이스 연주자가 나가 버려서 폴 메카트니나 존 레논이 베이스 연주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두 명 모두 베이스 연주를 꺼려 합니다. 베이스를 연주한다는 것은 무대에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비틀즈의 리더 자리에도 위협이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하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역시 인기와 관련된 것인데 여성들에게 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베이스를 담당하기 싫은 것이지요. 서로 여성들에게 인기를 얻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괄괄하고 성질 있는 존 레논 대신 폴 메카트니가 베이스 연주를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폴 메카트니는 그동안 사람들이 연주했던 것과는 다른 주법으로 베이스 연주를 구사합니다. 그의 훌륭한 베이스 연주에 많은 여성들은 환호했습니다.


  한편 존 레논은 폴 메카트니에 자극을 받아 러브 미 두라는 곡으로 인기를 끕니다. 이렇게 두 사람의 경쟁은 결국 비틀즈의 음악적 발전을 이루게 됩니다. 하지만 음악적 경쟁이 음악적인 갈등으로 심화되어 두 사람과의 관계는 점점 악화됩니다. 

작곡에도 일가견이 있던 폴 메카트니는 자신이 작곡한 <예스터데이>를 직접 부르겠다고 선언합니다. 이 노래는 알고 보면 존 레논을 조롱하며 만든 곡입니다. 지난 번 <헤이 주드>는 존 레논의 이혼으로 아픔을 겪게 되는 아들 줄리안을 생각하며 만든 노래인데 중간중간 존 레논을 비난했던 노래라고 포스팅했는데요.  

마찬가지로 <예스터데이>도 존 레논을 비난하고 조롱하며 쓴 곡입니다. 팬들에게 늘 인기를 얻었던 존 레논이 나중에 인기가 없어졌을 때 과거를 그리워하며 그때는 어떤 심정인지 추측하여 곡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아! 과거 그때는 좋았는데

이제 나는 숨을 곳이 필요해. 어디든지

아, 예스터데이(옛날) 그때가 좋았지...


이렇게 존 레논이 과거를 읊조리며 두번 다시 과거의 영광은 오지 않을 거라고 폴 메카트니는 노래합니다. 이후 존 레논이 팀을 탈퇴하고 솔로로 데뷔하여 그도 역시 폴 메카트니를 비난하는 노래를 만듭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갈등에 갈등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은 곧 끝이 납니다. 1980년 존 레논이 암살을 당했거든요. 


링고스타 경의 기사 작위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비틀즈는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 두 거장의 음악적 생각이 달라 오히려 수많은 명곡을 탄생시킨 점이 우리들에게는 큰 행복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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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대표하는 록그룹 비틀즈

-폴 메카트니, 존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 4인조 록밴드

  존 레논은 본부인이었던 신시아와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들 쥴리안도 있었는데 결국 이혼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알고 보니 존 레논에게는 이혼녀이자 일본인인 요코 오노와 사랑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일본인 요코 오노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신시아는 큰 충격을 받고 결국 이혼한 것이지요.

 "존, 너 이래서는 안돼. 가정을 지켜야 우리 비틀즈 음악도 잘 될거야. 부탁이다."

 "폴, 이건 나의 일이야. 그리고 앞으로는 절대 나의 사생활에 간섭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폴 메카트니가 존 레논에게 그의 아들 쥴리안을 생각해서라도 신시아와 잘 지낼 것을 당부하였으나 이혼을 하고 말았지요.

이후 존 레논을 대신하여 폴 메카트니는 쥴리안과 놀아 주기도 하고 정겹게 대해 줍니다.

폴 메카트니도 예전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어머니의 빈자리에 큰 상처를 받으며 자랐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폴 메카트니는 쥴리안을 그런 상처를 받으며 자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었던 것이었지요. 시간이 날 때마다 쥴리안을 찾아 가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도록 최선을 다했지요.

하지만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아무리 애를 썼지만 쥴리안에게 폴 메카트니는 아버지가 아니라 삼촌 정도로 생각하였지요.

마음의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은 쥴리안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됩니다. 너무나 힘들고 어려웠던 어린시절, 생각하기도 싫은 그 시절을 쥴리안이 똑같이 고통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폴 메카트니의 가슴은 너무나 아픕니다.

그래서 폴 메카트니는 쥴리안을 위해 노래를 한 곡 만들기로 작정을 합니다. 멋진 곡을 써서 쥴리안의 고통을 위로하고자 한 것이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열과 성을 다해 만든 곡이 비틀즈의 최고의 명곡 중 하나인 <Hey Jude>입니다. 여기서 Jude는 쥴리안을 나타냅니다. 

 이 곡의 가사에 쥴리안에게 당부하는 말, 위로하는 말을 담아내고 은연 중에 존 레논을 비난하는 가사말도 넣었습니다.

<위로>

  • Hey jude, Don't make it bad 쥴리안, 나쁘게 생각하지마라.

  • Take a sad song and make it better 슬픈 노래를 좋은 노래로 만들어 보자. 

  • 즉 쥴리안이 나쁜 생각을 하지 말고 노력하면 더 좋은 일이 생긴다고 말하며 쥴리안이 어려운 현 상태를 극복하고 행복해 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비난>
  • For well you know that it's a fool who plays it cool. By making his world a little colder. 자신의 세계를 차갑게 만들고 잘난척 하는 녀석이 있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그리고 노래를 발표하자마자 빌보트차트에서 9주동안 1위를 차지하는 사랑을 받게 됩니다.

노래 듣기는 다음 링크를 클릭하세요

존 레논이 폴 메카트니에게 이야기 합니다.
"폴, 이 노래 정말 최고야" 
 라고 말하며 폴 메카트니가 자신과 요코오노를 위해 만든 노래라고 착각을 합니다.
'착각하지마라, 임마. 넌 이 노래에 대해 이야기 할 자격도 없는 놈이야. 이 곡은 너 때문에 상처받은 쥴리안을 위한 노래라고... '

이후에도 폴 메카트니는 쥴리안을 버린 존 레논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또 두 사람간에 음악적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로 인하여 결성 3년만에 전격 해체되고 맙니다.

둘이서 함께 좀 더 오래 음악생활 하면서 좋은 명곡을 만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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챨리채플린 이후 최고의 코미디 명배우 짐캐리

캐나다에서 태어난 짐캐리의 가정형편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정 경제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짐캐리는 학교도 다 다니지 못하고 일찍부터 돈을 벌러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가정형편은 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늘 쪼들린 형편에 짐캐리의 아버지는 의기소침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구점에서 뭔가를 사와서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아니, 이게 뭐냐? 음. 천만달러 수표가 아니냐?"

"예. 아버지, 맞아요. 천만달러짜리 수표입니다. 비록 문구점에서 산 가짜수표지만 언젠가는 제가 천만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어 그때는 아버지께 진짜 천만달러 수표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너는 꼭 천만달러는 받는 명배우가 될거야. 나는 너의 재능을 믿는다. 그리고 아들, 이 수표는 네가 지니고 있어라. 배우가 되려면 많은 시련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이 수표를 꺼내보며 마음을 다 잡거라. 사랑한다. 아들."

짐캐리는 이날 아버지앞에서 천만달러를 받는 배우가 되리라 굳게 다짐을 합니다.

미국 헐리우드로 가다.

그렇게 천만달러 배우라는 꿈을 안고 미국 헐리우드로 갑니다. 그리고 무작정 영화사를 찾아갑니다.

"무슨 역할이라도 좋으니 한번 맡겨봐 주십시오. 저는 잘해 낼 수 있습니다."

"저 사람 뭐야. 바쁜데 빨리 쫓아내!"

단역이라도 얻고 싶었지만 가는 영화사마다 그를 반긴 것은 문전박대였습니다. 천만달러 배우는 고사하고 당장 먹고 살 것이 그의 현실이었습니다. 집이 없어 공원에서 노숙을 하고, 먹을 것이 없어 심지어는 공원에 누군가 먹다 버린 음식물을 주워 먹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천만달러라는 배우의 꿈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배우로 성공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도 있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야 하겠다는 의지가 더 컸을 것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그에게 힘이 된 것은 그의 품안에 있던 가짜 천만달러 수표였습니다. 그것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시 고쳐 먹고 연기 연습에 매진합니다.

기회가 찾아오다.

그러던 어느날 미국 nbc방송사에서 덕 패밀리 라는 프로그램 오디션에 참가합니다. 이 오디션에서 짐캐리를 눈여겨 본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로드니 데인저필드였습니다. 그의 발탁으로 짐캐리는 덕패밀리의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 됩니다. 덕패밀리에서 젊은 만화가 역할을 완벽하게 연기하여 배우로 이름을 점차 알리게 됩니다. 그렇게 몇 편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게 됩니다. 하지만 배우로서 큰 주목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 언제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초조한 마음이었지만 그때마다 그에게 힘이 되어 준 것은 가짜천만달러짜리 수표였지요.

최고의 배우가 되다.

1994년 짐캐리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한편의 영화에 출연합니다. 그건 바로 <마스크>입니다. 은행원으로 일하는 평범하고 소심한 스탠리역을 맡은 짐캐리. 우연히 고대의 유물 마스크를 습득하게 됩니다. 이 마스크는 신비로운 힘이 있어 마스크를 쓰면 초인적인 힘을 지닌 불사신이 됩니다. 이 소심하고 겁많은 은행원 역할과 초인적인 힘을 지닌 불사신의 상반된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한 짐캐리의 연기력에 힘입어 이 영화는 공전의 히트를 합니다. 이 영화로 일약 최고의 배우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후 출연한 덤앤더머, 에이스벤츄라2에서도 다양한 표정연기로 대히트를 칩니다. 이렇게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가 된 짐캐리.

천만달러 배우가 되다.

어느 날 영화 배트맨 포에버의 계약이 있던 날. 배트맨 포에버에 캐시팅 되는 주인공은 짐캐리였습니다. 계약서에는 당당하게 천만달러의 개런티를 지급한다는 계약이 있었지요. 드디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 하지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아버지, 이제야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는데 벌써 가시다니요. 너무 늦게 약속을 지켜 죄송해요. 아버지...."

짐캐리는 관속에 천만달러를 아버지의 품속에 넣어 관과 함께 묻었다고 합니다. 천만달러는 옛날부터 지닌 천만달러인지 아니면 영화개런티로 받은 천만달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은 노력한 만큼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아무리 시련이 있더라도 그걸 헤쳐나갈 수 있는 실천력과 의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중요한 것은 아들을 인정하고 격려해주는 아버지의 자세....전 이글을 쓰면서 아들에게 격려와 희망을 주었는지, 비난과 잔소리만 주었는지 반성하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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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영화 <007 시리즈>

총 24편의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적자를 기록한 적이 없고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남자 배우들 모두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21번째 007시리즈에서 본드걸 여배우 섭외에 어려움이 많았다. 영화 촬영을 시작해야하는데 여주인공인 본드걸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섭외하고자 하면 여배우들 모두 하나같이 거절을 했다. 당대 최고 인기 영화인 007에 출연한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이상하게도 모두 거절을 했다. 거절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본드걸의 저주에 걸리고 싶지 않다.>라는 이유였다.

그렇다면 본드걸의 저주란 무엇인가?

그것은 007 시리즈에 본드걸로 출연한 여배우가 다음 흥행작을 내놓지 못하고 쓸쓸히 영화계에서 사라져가는 것을 의미한다.

1962년 최초의  007시리즈 제1탄이 제작되었다.  <007살인번호>에 출연한 우슬라 안드레스(1대 본드걸)은 육감적인 몸매를 한 배우였다. 영화의 장면에서 하얀 비키니를 입고 바다에서 백사장으로 걸어나오는 장면이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그녀가 입었던 하얀 비키니 수영복은 세계적으로 히트되었다. 하지만 1대 본드걸로서 엄청난 인기와 관심을 끌었던 우슬라 안드레스는 007영화 이후 총 12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모두 흥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쓸쓸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멀어져갔다.

1998년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에 달하는 본드걸들이 007영화에서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으나 007 영화가 끝난 후에는 출연하는 영화의 흥행실패로 몰락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본드걸의 몰락을 본드걸의 저주라고 불렀다.

 그동안 영화사에서는 제작비 등의 이유로 육감적인 몸을 가진 신인배우들을 본드걸로 캐스팅했었다. 그래서 본드걸들의 연기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를 물색하여 캐스팅하고자 했다.

그래서 1998년 이런 저주에 대한 논란을 잠재우고자 연기력이 검증된 당대 프랑스 출신 최고의 여배우 <소피마르소>를 본드걸로 영입한다.(한참 책받침이나 코팅된 사진을 문방구에서 팔았던 기억이 난다.)

청순한 이미지로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던 소피마르소를 <007 언리미티드>의 본드걸로 캐스팅 한 것이다. 영화는 대 성공이었다. 그래서 소피마르소에게 다음 작품에 출연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이렇게 본드걸의 저주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역시나 소피마르소도 본드걸의 저주를 피해가지 못했다. 다음으로 출연했던 영화들 모두 흥행에 참패하고 만 것이다. 

이제 누가 본드걸을 하려고 할까? 모두 기피하고 있던 찰나 할리베리가 찾아왔다. 그녀는 흑인 여배우로 2002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흑인 최초로 수상한 배우였다. 할리우드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던 여배우가 찾아와 자신이 본드걸 역할을 잘해낼 것이라고 장담하였다.

그녀는 007시리즈 제 20탄 <어나더데이>에 출연하게 된다. 이 007 영화 역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할리베리는 또 다른 대작 영화<엑스맨2>, <캣우먼> 등 2편에 단독 주인공으로 캐스팅 된다. 엑스맨이나 캣우먼은 대작으로 흥행에 실패할 수 없는 대작품이었다. 이렇게 저주는 풀리는 듯 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어마어마한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 모두 흥행 실패로 끝난다.

2005년 21번째 007 시리즈 영화 만들려고 하는 데 희망하는 여배우가 없다. 안젤리나 졸리 등 모든 여배우들이 본드걸의 저주란 이유로 출연 거부를 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는 신인 에바 그린이라는 여배우가 맡게 된다. 하지만 에바 그린 역시 007 이후 많은 영화에 출연했으나 마땅한 흥행작 없이 주목받지 못하고 말핬다.

2015년 <007 스펙터>까지 개봉되었는데 이 영화에 출연한 본드걸은 저주가 있을지 아니면 깨트릴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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