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부 막탄 공항에서 내려 택시 타고 다리를 건너고 15~20분 가면 세부 샹그릴라 호텔 리조트가 보입니다. 저는 택시를 자주 이용했는데 어떤 사람은 세부 택시기사들이 위험하게 운전하여 셔틀버스를 이용한다고 합니다. 저는 마사지 받으러 갈 때나 아얄라 몰을 갈 때 택시나 오토바이를 이용했는데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리조트 입구에는 세퍼트가 검문검색을 하고 있습니다. 이 리조트에는 실외 풀장, 리조트 전용 해수욕 바다, 사우나, 각종 운동기구 등이 잘 구비되어 있어 휴양하기 참 좋습니다. 어떤 객실은 객실 안에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으며, 베란다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분위기 잡으며 맥주도 마실 수 있습니다. 

 룸의 내부는 그리 넓지는 않지만 만족합니다. 방을 비우고 해수욕이나 풀장에서 놀다 오면 방은 언제나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고, 수건도 넉넉하게 구비해 주셔서 아무 불편이 없었습니다. 욕실도 늘 정리해 주시고, 필요 물품을 넉넉하게 넣어 주셔서 씻는데도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야외에서도 씻을 수 있는 샤워시설이 완비되어 있습니다. 풀장에서 수영을 하거나 해수욕을 한 다음에는 야외 샤워장을 이용해도 좋습니다.

 여행에서 뭐니뭐니해도 먹는 것인데 로비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타이즈 라는 뷔페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오다보니 고추장까지 준비되어 있으며, 각종 열대과일을 배불리 먹을 수 있습니다. 돼지고기 요리도 참 맛있는데 요리사들이 통돼지 바베큐를 양쪽에서 어깨에 메고 들어오는 모습은 참 이국적입니다. 통돼지 크기는 별로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기 돼지인 것 같습니다. 노래까지 불러가며 요란스럽게 식당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뭔 소리인가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통돼지 바베큐의 겉부분은 바싹하게 익어서 고소하고 속살도 소스를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었습니다. 이 돼지 요리를 렉촌이라고 부르는데 필리핀의 전통음식이라고 합니다. 조식 뷔페에는 없고, 석식 뷔페에서 맛볼 수 있습니다.

 야외 수영장에서는 조그마한 미끄럼틀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 수 있는 야외 수영장은 어른들도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늘 더운 나라에서 스트레스를 풀며 즐기는 수영장과 썬베드 지금도 다시 가서 즐기고 싶습니다. 야외 수영장에서 놀다가 모래사장이 그리울 때는 바다 쪽으로 걸어가서 썬베드에 누워 바다를 바라보며 이국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모래사장에는 직원들이 수시로 돌아다니며 타올을 수거하거나 청소도 하면서 해수욕을 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최대한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바다를 보다가 하늘을 보면 너무나도 맑은 하늘이 감탄을 하게 만듭니다. 바다 속을 바라보면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물이 깨끗합니다.

 오락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당구를 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실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이나 조그마한 플라스틱 공을 가지고 놀 수도 있습니다. 전자오락 게임기도 있어서 즐겁게 게임을 하였습니다. 실외에 골프 체험을 할 수 있고 탁구대에서 탁구를 칠 수도 있습니다. 곳곳에 놀 수 있는 장소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망고스틴을 먹고 싶어 택시를 타고 조금 나가면 노점이 있고 시장도 있습니다. 망고스틴을 엄청나게 사서 먹었는데 정말 맛이 꿀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온 망고스틴에는 꼭지 부분에 개미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 개미들이 돌아다녀서 집사람이 기겁을 하였습니다. 망고스틴을 욕실에 보관했기 망정이지 방안에 놓았다면 여행 내내 개미 잡느라 고생했을 것입니다. 욕실에 돌아다니던 개미는 샤워기로 싹 청소해 버렸습니다. 아무리 개미가 있어도 현지에서 먹는 망고스틴은 너무나 맛있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또 샹그릴라 리조트에서 놀고 싶다고 합니다. 일단 가보지 않은 여행지부터 섭렵한 후 샹그릴라를 다시 가볼 예정입니다. 모두 즐거운 여행 하시기 바랍니다.

 충남 아산 외암리에는 민속마을이 있습니다. 아산시민은 무료이지만 타지역 사람들은 어른 개인은 2,000, 어린이 개인은 1,000, 어른 단체는 1,600, 어린이 단체는 800원의 입장료가 필요합니다. 아산시민일 경우 신분증이 필요합니다. 민속촌은 사람들이 살지 않는 곳이지만 민속마을에는 사람이 직접 살고 있는 곳입니다. 

  표를 끊고 입장을 하면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이 다리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데 자세히 보면 물 속에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 이 물고기를 잡아 먹으려고 하는지 오리들이 유유히 수영을 합니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에는 물레방아가 있습니다. 예전에 왔을 때는 물이 흘러서 물레방아가 돌아가고 있었는데, 오늘가서 보니 물이 없어서 그런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왼편으로 계속 가다보면 떡방아 체험, 떡판매하는 곳을 볼 수 있구요. 그 앞에는 장승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계속 전진하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민속놀이 체험장이 있습니다. 줄타기 체험, 투호놀이 체험, 링고리 던지기 등을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움직이지도 않는 우마차 위에 올라가 재잘거리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하는데 뭐가 그리 좋은지 히히덕 거립니다. 아이들의 동심이 참 부럽습니다.

 민속놀이 체험장 앞에 있는 초가집과 기와집에 들어가면 조상들이 사용하던 여러가지 농기구나 생활 용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옷을 만들기 위한 물레, 벼를 탈곡하기 위한 탈곡기, 부엌 용품 등 지금은 거의 보지 못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어 어렸을 때의 생각에 잠기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한지부채 만들기, 한지손거울 만들기, 연필꽂이 만들기, 방문걸이 만들기, 율무팔찌 만들기, 탈 꾸미기, 엿 만들기, 고추장 만들기 등 각종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이용요금은 7,000원에서 11,000원이 필요합니다. 민박도 외암리민속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통해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또 이곳에서 만드는 연엽주도 맛볼 수 있고, 선물용으로 사셔도 좋습니다. 관람하다 보면 식혜 등 전통 음료를 파는 곳도 있으니 들어가셔서 음료 맛도 보시고, 한옥의 이곳 저곳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외암리민속마을에는 여러 식당들도 있습니다. 외암촌에가시면 잔치국수를 맛보실  수 있고산야들이 쌈밥정식도 괜찮습니다좀더 떨어진 곳에 외암골에는 점심에 손님들이 많이 찾습니다저는 낙지볶음을 먹었는데 맛있게 먹었습니다아이들과 함께 조상들의 생활모습을 살펴보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면 외암리 민속마을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로 유명한 나라 이집트, 고대 문명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집트,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이집트의 나일강에서 발생한 문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나일강은 남쪽 적도(우간다, 탄자니아) 빅토리아 호에서 시작하여 지중해까지 이르는 길이가 6,650km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긴 강입니다. 나일강은 구불구불 흐르다가 하류쪽에서는 부채처험 활짝 펴지는 삼각주가 나타납니다. 삼각주는 강의 하류에 삼각형 모양으로 이루어지는 지형인데, 대표적인 곳이 이곳 나일강 삼각주입니다. 삼각주는 토양이 매우 기름지고 농사가 잘 되는 지역입니다. 이집트에는 거대한 사하라 사막이 펼쳐 있는데 이곳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사람이 살기 힘들고 풀조차 잘 나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나일강 주변은 물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는 작은 나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웅다웅 싸우기도 하면서 발전해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나일강 상류와 하류를 중심으로 발전합니다. 나일강 상류는 상이집트, 하류는 하이집트로 불리워졌는데 오랜 싸움 끝에 상이집트 나르메르왕이 하이집트를 정복하여 이집트를 통일하였습니다. 나르메르 왕은 곧 멤피스에 도읍지를 세우고 각종 공사를 하며 나라의 근간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나일강에 둑을 쌓고, 수리 시설도 만들어 농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통일 왕국으로 꾸준히 발전하게 된 원동력은 같은 언어와 문화적 동질감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파라오라는 존재였습니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왕을 부르는 말로 파라오는 태양의 아들, 즉 인간이면서 동시에 신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파라오에게 복종하고 신비로운 존재로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파라오는 나일강의 홍수에 대해 정확히 맞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별자리를 관측해서 나일강이 범람할 시기를 예상한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백성들은 파라오가 태양신의 아들이기때문에 저런 놀라운 능력이 있구나 하며 따랐던 것입니다. 이런 파라오를 위해 백성들은 피라미드라는 것을 만들어 보답하였습니다. 파라오의 권력이 강력했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피라미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무덤인데, 안에는 미라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시신이 썩지 않고 건조되어 원래의 모습 가까이 남아 있도록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빠져나와 사후 세계에 가고, 사후 세계를 건너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이 세상으로 돌아온 영혼은 다시 자신의 육체로 돌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육체가 썩어버리면 영혼이 들어갈 곳이 없으므로 미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피라미드가 거대한 이유는 파라오가 죽으면 피라미드에서 산다고 믿었습니다. 파라오가 불편하지 않고 편안히 살게 하기 위해 넓고 크게 지었으며 금은보화도 넣어 사후 세계에서 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현실 세계 위주의 문명이었다면, 이집트 문명은 사후 세계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것이 두 문명의 큰 차이점이라고 합니다.

  이집트는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합니다. 강물이 범람하는 죽음의 계절을 버티면 곧 생명의 계절 봄이 오는 것으로 보아 죽음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도 이렇게 태어나고 죽고하는 과정을 되풀이 한다고 생각하여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입니다.

  또 나일강이 범람하고 농사 짓는 과정에서 발전한 학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하학을 비롯한 수학이었습니다. 강물이 범람하면 그 동안 내 땅이었던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니, 내 땅을 찾기 위해 측량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하학, 수학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집트 문명의 문화 유산 중 유명한 것은 아부심벨 신전,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오벨리스크, 피라미드, 스핑크스 등이 있습니다. 이중 아부심벨 신전은 이집트의 전성기를 이끈 람세스 2세의 신전입니다. 거대한 조각상을 입구에 배치하고 신전 근처에는 아스완 댐 건설로 생겨난 나세르 호수가 있습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만나러 언젠가 한번 떠나고 싶은 이집트였습니다.

  이탈리아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에서 기차를 타고 피사로 갔습니다. 기차 안에는 사람이 별로 없어 좌석도 넉넉하게 앉아 갔습니다. 로마에 와서 대중교통을 탄다는 것이 조금 부담스러웠으나 피사에 도착하고 보니 기차 타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았습니다. 피사 역에서 내린 후 구글 지도 앱을 열었습니다. 어느 정도 걸어가다가 사람들이 많이 있는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피사의 사탑을 향해 걸었습니다. 

  3~40분쯤 걸었나 싶었는데 드디어 피사의 사탑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말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예약된 표를 끊은 후 검문 검색을 마치고 드디어 탑위로 올라갑니다. 올라가는 도중 몸이 자꾸 한쪽으로 쏠립니다. 그리고 어지럼증이 생겨납니다. 계단은 얼마나 사람들이 오르내렸는지 사람들이 밟은 부분이 약간 패여 있었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왔다는 증거입니다. 가운데 줄을 매달아 놓았는데 얼마나 기울어 졌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사탑 위에서 피사 시의 전경을 눈으로 살펴보며 어지럼증을 이겨내려고 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축구 경기장이 바로 눈 앞에 보여 즐거웠습니다. 이곳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으나 좀 떨어진 거리라 선수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피긴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갈릴레이가 이곳에서 낙하 실험을 했다고 중학교 과학시간에 선생님께서 설명해 주셨는데 어느 지점에서 낙하 실험을 했을까 찾아도 보았습니다. 갈릴레이가 크기가 다른 쇠구슬 2개를 가지고 이 곳에서 동시에 놓으면 어느 쇠구슬이 먼저 떨어질까? 실험을 했지요. 대부분 사람들은 무게가 무거운 쇠구슬이 지면에 먼저 떨어질 것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저항을 적게 받는 좀더 가벼운 쇠구슬이 먼저 떨어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드디어 실험을 해 본 결과 두 쇠구슬은 동시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갈릴레이가 이 실험을 피사의 사탑에서 하였다는 것은 어디에도 기록이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무거운 것이 먼저 떨어진다는 사실을 모두가 옳다고 믿고 있을즈음 사탑에서 공개적으로 실험을 하면 위험한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정말 그렇게 실험을 할 수 있었겠느냐 주장을 합니다. 

  그럼 피사의 사탑은 언제 왜 조성되었을까요?

 피사 대성당의 동쪽에 있는 탑으로 종탑으로 조성되었습니다. 1173년 처음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만드는 중간 약간 기울어지는 현상이 발생되어 약100년 후 다시 조성되었으나 또 다시 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360년 완공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완공후에도 1년에 1mm씩 기우는 현상이 발생되어 여러 가지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현재는 기울이는 것이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약을 통해 한번에 정해진 인원만 입장하고, 사람이 나오면 다음 사람들이 올라가서 구경하도록 인원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이기도 한 피사의 사탑은 로마 관광 시 꼭 빼먹지 말고 가 보시기 바랍니다. 약간 거리가 먼 것은 흠이지만 그래도 가볼만한 곳입니다.

  그리고 소매치기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4인 가족이 가방을 메고 피사의 사탑에서 피사 역으로 걸어가는 데 어떤 흑인 청년들이 자꾸 따라와서 신경이 쓰였습니다. 제가 뒤를 돌아보면 다른 곳으로 가는 척하다가 다시 쫓아와서 계속 큰 길로만 다녔습니다. 제가 계속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니 그들도 어느 순간 안보이더라구요. 외국에 나와서는 항상 자기 소지품 잘 챙기고 괜히 나에게 말을 걸거나 하면 빨리 그 자리를 피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되었던 경험이었습니다. 

<군산으로 떠나자>

언제 다시 찾아도 볼 것 많고 근대 역사가 살아 숨쉬는 군산

살아있는 근대 역사교육 도시인 군산으로 여행을 떠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걸어다니며 군산의 근대 역사를 알아보고, 군산근대역사발물관을 시작으로 하여 근대 문화를 담은 시설들이 벨트화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모든 코스는 도보로 모두 둘러보실 수 있고, 유명한 짬뽕집과 이성당 빵집도 들려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이곳을 산책하시며 모두 구경하고 싶으시면 한번에 통합 관람권으로 끊으시면 좋습니다.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

 군산 근대 역사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는 모토로 과거무역항으로 해상 물류 유통의 중심지였던 옛 군산의 모습과 전국 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서해물류의 유통의 천년,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서 공부하시면 좋은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조금 지루해 해서 탈입니다. 사전에 미리 군산에 대해 공부하고 가시면 호기심을 극대화 시키고, 미리 공부하고 온 내용이라 더 관심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층에는 해양물류역사관, 어린이 체험관이 있어 해양물류역사를 알아보고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해저 유물, 선사시대부터의 삶, 각종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호기심을 유발합니다. 가운데에는 배가 한 척 있는데 이 배는 세금을 운송하던 조운선입니다. 배 앞에서 기념 촬영 해 보세요.

2층에는 옥구 농민 항일항쟁 기념전시실, 기증자 전시실이 있어 옥구 농민 항일항쟁에 대해 알아보고 기증자들이 기증한 전시물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던 군산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독립유공자와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의 모습을 살펴 보실 수 있습니다.

3층에는 근대생활관, 기획전시실이 마련되어 있어 근대 생활의 이모저모, 기획 전시물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근대생활관에는 1930년대 군산의 거리를 재현해 놓았는데 일본의 수탈 현장, 백성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 보실 수 있고, 탁본도 하실 수 있습니다.


<구 군산세관>

군산항을 개항한 대한제국이 1908년 준공하였으며 유럽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하여 유럽의 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전주의 양식은 국내에 서울역사, 한국은행 본점 건물, 구 군산세관 이렇게 3개 뿐이며, 서양 건축양식이 수입되어 왔던 근대 초기의 건물로 건축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붕은 고딕양식, 창문은 로마네스크양식, 현관의 처마를 끄집어 낸 것은 영국의 건축양식으로 전체적으로 유럽의 건축양식을 융합한 근세 일본 건축의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옛 세관의 모습을 일부 재현하였고 당시의 착용한 관세청 직원복, 당시 문서, 직인, 직원 수첩 등 운영 물품을 볼 수 있습니다. 학교 국사시간에 배웠던 묄렌도르프가 기억날 것입니다. 이 독일인이 초대 조선해관 총세무사였다고 하며 묄렌도르프 관도 있으니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군산세관장 옷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 있습니다.


<미즈카페 미즈커피>

일제강점기 무역회사로 사용되던 건물로 당시 일본인이 운영한 미즈상사는 식료품과 잡화를 수입해 판매하던 회사였습니다. 이곳은 한 때 은행 건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해방 이후 검역소로 사용하였으며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정면에 위치해 있던 건물을 이전 및 보수 복원하여 현재는 여행에서 잠시 쉼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군산의 옛 모습들이 나타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다다미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곳에 책이 구비되어 있으니 조용히 책 한권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만원이지만 한번 들려보시면 잘 왔다 생각하실 겁니다.


<장미갤러리>

일제강점기의 용도나 기능을 확인할 수 없는 건축물이나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위락시설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 폐허가 된 건물을 2013년도에 보수 복원 과정을 거쳐 현재 체험학습 및 예술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1층에는 천연염색, 천연비누, 향초 등을 만들 수 있는 체험공간(유료)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군산시 대표 화백인 하반영 선생의 기증작이 분기별로 다른 주제를 가지고 상설 전시 되고 있습니다. 군산 출신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되기도 하니 다양한 미술 작품을 감상하십시오.


<군산근대미술관>

) 장기 18은행은 일본 나가사키에 본사를 두고 있던 일본 지방은행으로 군산지점은 1907년에 조선에서는 일곱 번째로 건립되었습니다. 이 은행은 말만 은행이지 고리대금업에 치중한 대부업체에 가깝습니다.  즉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미곡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금융기관입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초반에 지어진 은행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는 분기별로 주제를 정하여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장미공연장>

 장미꽃이 연상될 것 같은 장미공연장. 하지만 장미는 장미꽃이 아닙니다. 저장할 장, 쌀미, 즉 쌀을 저장하는 창고라는 의미입니다. 이 건축물은 쌀을 수탈하기 위해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쌀을 보관했던 창고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건축물을 2012년도에 다목적 공연장으로 개보수하여 공연을 하기도 합니다.


<군산근대건축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 금융시설로 일본인 건축가 나까무라 요시헤이에 의해 설계, 중국인에 의해 시공되었습니다지붕모양은 일본 장군의 투구모양을 본 딴 우진각 형식, 중간에 고창을 설치하여 자연채광은 물론 군산을 감시하는 역할도 하였습니다.(외관은 2층이지만 본래 높이는 4층 건물높이임.)

근대 건축물의 모습에 대한 전시를 시작으로 옛 조선은행의 역할과 조선은행이 관망했던 군산 모습, 일본의 수탈과 그에 대한 군산의 저항 운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일본 상인들에게 각종 특혜를 제공하며,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의 경제적 침탈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은행 건물입니다.


<진포해양 테마공원>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국방부의 매향리 사격장 대체부지선정과정에서 2006년 군산시 옥도면 직도가 선정됨에 따라 정부에서 군산시에 보상의 형태로 국방부 및 해경의 군경 장비 1316대를 무상으로 대여해줌으로써 조성되었습니다세계 최초의 함포해전으로 기록되는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으로 고려말 최무선장군이 왜선 500여척을 패퇴시킨 전적지인 내항에 대한민국의 해군함선 등 육해공군의 퇴역 군장비(1316)등을 전시하고 있는 테마공원입니다진포해양테마공원 내 위봉함 전시관에는 최무선과 진포대첩, 전쟁유물전시, 해양전시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군산에 와서 역사를 공부하려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위봉함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꼭 들어가 보십시오.


<군산화교역사관>

군산화교역사관은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화교 여건방씨가 1969년부터 2005년까지 중화요리집 용문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2017년 보수·복원하여 현재의 군산화교역사관으로 개관하였으며, ‘군산화교의 역사와 문화’, ‘추억의 중화요리집을 보여주는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크고 웅장한 건물은 아니지만 화교의 생활모습을 알 수 있는 살아있는 교육 공간입니다.


<초원사진관>

군산 초원사진관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로 유명한 곳입니다이 영화는 아버지를 모시며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진사 정원(한석규)과 어느 날 그의 앞에 나타난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의 못다 한 사랑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군산시 월명동 초원사진관에서 촬영되었습니다. 촬영이 끝난 뒤 초원사진관은 주인과의 약속대로 철거됐다가 이후 군산시가 다시 복원해 군산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초원사진관에는 영화 속에 등장했던 사진기와 선풍기, 앨범 등이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름이 나서 사진관이 시설이 좋을 것으로 생각되겠으나 그냥 동네 조그마한 사진관을 연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일제강점기에 대규모 포목상이었던 일본인 히로쓰가 건축한 전형적인 일식가옥으로, 지붕, 외벽 마감, 내부 정원 등이 건축 당시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건축사적 가치가 크며,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등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목조 2층 건물로 일본식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고 눈으로만 봐야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동국사>

개항 후 일본인과 함께 들어온 일본 조동종(曺洞宗) 사찰인 금강사로 건립했으나, 광복 후 조계종 사찰 동국사로 변경하여 현재에 이릅니다대웅전과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고 지붕물매는 급경사를 이루는 등 일본사찰 건축양식을 따른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입니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의 절과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우당>

고우다의 전라도 사투리 고우당께를 표현한 이름을 가진 이곳은 나라 잃은 설움의 아픔을 되새기고자 만든 공간입니다일제강점기 외국인 거주 지역으로 1930년대의 근대건축물을 보수 정비하여 숙박 체험관 6, 선술집, 카페, 식당 등 판매시설 10동 건축 재상관등을 구비한 근대역사 문화체험 공간입니다. 일본식 숙박업소로 예약하여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만 예약이 어렵기도 합니다. 

 

<군산테디베어 뮤지엄> 

어린이가 행복한 도시 군산에 테디베어뮤지엄이 20165월 완공 되었습니다. 각 나라의 특징과 상징물들을 재미있게 묘사한 전시물들은 전 세계 주요도시와 군산의 역사를 알 수 있도록 꾸몄을 뿐 아니라 세계의 명화 역시 테디베어들로 재해석하여 전시하여 교육과 재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쌀 수탈 장면 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 디오라마와 세계의 비극적 사랑을 표현한 에바 페론’, ‘나비부인’, ‘패왕별희등의 사랑이야기들을 디오라마 하여 학생은 물론 성인들에게도 마음의 점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군산 이당 미술관>

40년 넘게 군산 영화동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겨준 동네목욕탕 영화장2008년 이후 활력을 잃고 빈 건물로 구도심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화장에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어 20155월 미술관으로 새롭게 재생되어 개관하였습니다. 널찍한 옛 목욕탕의 흔적이 남아 어릴 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동네미술관인 이당미술관은 동네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되어 지역의 브랜드를 키워내는 디자인 발전소로 기능할 것입니다.


<해망로 196전시관>

경매에 참여할 수 있는 군산 옥션(1), 골동품 및 생활용품 등 선조들이 실제 사용했던 민속품 3만여점이 전시된 전시갤러리(12),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테라스형 카페(3) 등으로 구성된 문화복합 단지입니다. 2층 전시갤러리는 민속품 전시 외에도 60~70년대 교실을 재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보라카이 관광업자들이 자연을 먼저 생각하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는데 결국 폐쇄되어 그 피해가 자신들에게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보라카이의 멋진 경치를 보러가는 사람들에게도 피해가 되고 말았습니다. 4월 26일부터 6개월간 보라카이가 폐쇄되니, 여름철 성수기 영업은 하지 못하게 되었네요. 두테르테 대통령이 시궁창이라던 보라카이를 되살리기 위해 6개월간 폐쇄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여름 휴가를 보라카이에서 보내려던 예약자들은 환불을 받거나 6개월 이후로 연기해야 합니다. 각 여행사에서는 수수료를 물지 않고 전액 환불해준다고 했는데 당연한 것을 가지고 괜히 생색을 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물론 여행사도 많은 피해를 보겠지만 수수료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고 전액 할부해 주는 것이 여행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어 앞으로 그 여행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작년 기준 중국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은 것으로 통계가 나왔는데요. 통계를 보듯이 보라카이 해변은 참 아름답고 경치가 예쁜 곳입니다. 다시 아름다운 청정 해역으로 되찾을 수만 있다면 1년이고 2년이고 못 기다리겠습니까? 

 보라카이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걱정이 태산일 것입니다. 우기가 시작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즉각적인 폐쇄가 결정되었으니 생업에 많은 지장이 있을 것 같습니다. 항공업계에서도 보라카이에 취항하던 국내 항공사들의 운항을 중단한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 보라카이 숙박업소나 식당들의 무분별하게 폐수를 버리는 행위, 오토바이에서 내뿜는 매연 등등이 아름다운 보라카이를 공해로 오염된 섬으로 만들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언제고 다시 재개되면 관광객, 보라카이 주민, 보라카이 여행업 종사자 모두 환경을 생각하는 정신으로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 자손 대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보라카이 문제를 생각하며 우리나라 관광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아차하는 순간에 아름다운 관광지는 사람들이 찾게 되면서 한순간에 오염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환경을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해외 여행 시 기내 반입 금지 물품


지난 번 여행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검색대를 통과하는데 검색원이 가방을 열어보라고 합니다. 그 가방은 휴대용 양치도구를 이마트에서 4개 사서 필요할 때마다 양치를 하려고 넣은 여행용 미니 크로스백이었습니다. 검색원이 그 가방을 열어 보더라구요.

"아! 양치도구가 4개 있네요. 이것때문에 검색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내 반입을 할 수 없습니다."

검색원이 말하더라구요.

그게 뭐냐구요?

바로 치약이었습니다. 휴대용이라 전혀 검색당할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용량을 보니 120ml라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휴대용 양치도구를 어쩔 수 없이 버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전 중국 공항에서 노트북 때문에 한참만에 짐을 부친 일이 있어서 정말 신경을 썼는데 양치도구에서 걸리다니 좀더 신중하지 못한 제 자신을 반성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해외 여행 시 기내 반입이 금지된 물품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선 비행기를 탈 때에는 위험한 물건을 기내 반입 금지한다는 것은 일반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것이 반입이 안될 수 있으니 잘 살피고 비행기를 타야 하겠습니다.


1. 다용도 칼, 가위

 동남아시아로 여행 가서 망고를 사서 칼을 이용하여 드시고 싶거나, 맥가이버 칼 등으로 급할 때 사용하려고 가져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내 반입은 할 수 없습니다. 검색대에서 걸립니다. 맥가이버 칼 등은 위험한 무기류에 속하기 때문에 수화물로 부쳐야 합니다.


2. 액체류

 액체류는 원칙적으로 기내 반입이 금지됩니다. 그래서 검색대 통과하기 전 물을 마시고 빈병을 휴지통에 버리는 사람을 종종 볼수 있는데요. 액체류(화장품, 음료수, 물 등)를 가지고 비행기를 타고 싶으면 100ml 미만으로 해서 가지고 들어가야 합니다. 


3. 각종 공구나 스포츠용품

"저는 배드민턴을 좋아해서 배드민턴 라켓을 기내에 가지고 타고 싶어요." 이렇게 하면 검색대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골프채, 배드민턴 라켓, 야구배트 등 남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스포츠 용품은 가지고 탈 수 없습니다. 물론 각종 공구는 날카롭거나 위험하기 때문에 수화물로 부쳐야 합니다.


4. 전자제품의 반입

전자제품은 대부분 반입이 가능한데 휴대폰 배터리나 보조배터리는 기내에 가지고 타야 합니다. 리튬배터리는 노트북이나 휴대폰에 들어가는데 용량이 큰 것은 반입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항공사에 알아보시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5. 어떤 물건이 기내 반입이나 수화물로 부칠 수 있는지 긴가민가 하면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직접 항공사나 여행사에 문의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제 저는 여행을 하기 전에 수화물로 부쳐도 되는 것, 꼭 기내로 가지고 타야 하는 것, 기내로 가져가도 되는 것을 잘 분류하여 짐을 부친 후 다시 꺼내거나 검색대에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또 요즘은 검색대에서 택배로 자신의 집으로 보내거나, 물품 보관함에 넣은 후 찾아가는 서비스도 있다고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라면 그냥 공항에 보관하고 여행 후에 찾아가겠는데요.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검색대에서 기내 반입 금지 물품을 적발당했을 경우 직원의 안내를 받습니다.

2. 금지물품 보관을 위한 서비스 부스로 갑니다.

3. 직원의 안내에 따라 보관증을 쓰고 물건을 맡깁니다. 물론 유료서비스이니 돈을 내야 합니다.

4.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세요. 행복한 휴가를 보내시면 됩니다.

5. 여행 후 물건을 찾아 댁으로 가시면 되겠습니다.


준비를 잘 하시어 즐거운 여행하시고 행복한 여행 되십시오.

<루브르 박물관 모나리자를 찾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가 전시되어 있는 루브르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다빈치가 세상을 떠나는 그순간에도 소중하게 간직했던 그림이 모나리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그림의 원래 이름은 <피렌체의 어느 귀부인>이었다가 나중에 이 그림이 프랑스왕이었던 프랑스아 1세에게 넘겨지자 <베일을 두른 애인>이라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미술가 조르지오 바사리가 이 그림에 부인을 뜻하는 <모나>와 그림을 의뢰한 사람의 부인의 이름 리자 게라르드니 중 <리자>를 가져와서 <모나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다빈치가 살았던 중세 시기에는 얼굴에 명확한 선으로 경계를 만들어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다빈치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데 이른바 스푸마토 기법입니다. 이는 미세하고 섬세한 붓질을 반복하여 얼굴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여 부드러운 표현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빈치는 그림을 그릴 때 황금비율에 따라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데요. 모나리자 역시 1:1.618의 황금비율로 얼굴과 상반신의 비율을 맞추었습니다. 그래서 그림이 안정감이 있으며, 편안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나리자의 모델은 누구일까요? 여러 의견이 분분한데요. 먼저 모나리자는 다빈치 자신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다빈치의 웃는 모습을 여성처럼 그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또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동성애를 맺은 사람의 얼굴을 여자처럼 그린 것이라고 하는 의견입니다. 다빈치는 예전에 동성애를 하여 경찰에 체포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동성애를 하면 사형에 처해질 정도로 매우 엄격한 죄를 물었는데 다빈치가 체포된 것입니다. 정말 운좋게 다빈치의 동성애 관련 청년이 메디치 가문의 사람이라 다빈치도 석방이 됩니다. 하지만 이 일로 그는 동성애자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라이라는 청년의 멋있음에 반하여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립니다. 하지만 살라이를 남성으로 그리게 되면 그도 또한 동성애자라고 하여 처벌을 받을 수 있어 여성으로 그렸다는 설입니다. 살라이는 다빈치의 제자인데 도벽으로 인해 많은 속을 썩였어도 그를 제자로 두고 <모나리자>그림을 자신이 애지중지 하다가 죽기 전 살라이에게 전해달라고 하였으니 살라이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모나리자 그림을 좋아했던 사람 중에는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도 있습니다. 그래서 모나리자를 그린 다빈치의 정신세계도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는 연구를 통해 다빈치의 그림 <성 안나와 함께 있는 성 모자상>에서 동성애 성향을 찾아내기도 했습니다.

다빈치가 진짜 동성애자였는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여러 기록을 보면 동성애자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짐작해 볼 수는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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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릉을 찾아서>

진시황릉은 교과서에 나오는 장소이고 꼭 알아야 할 역사적 유적지라서 아이들과 함께 견학하러 갔습니다.

조나라에 인질로 잡혀 온 공자 영자초는 여불위 집에 자주 갔습니다. 거기서 조희라는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조희는 여불위의 애첩이라고 하는데 공자 영자초는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여불위, 조희를 내게 주시오."

"아니, 공자님. 조희는 저의 여인입니다. 어찌 공자께서는 남의 여인을 달라고 하십니까?"

"여불위, 부탁이오. 내게 주시오."

이렇게 하여 공자 영자초는 조희를 아내로 삼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이미 조희는 여불위의 아이를 가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영자초는 인질 생활을 마치고 진나라로 돌아와 장양왕이 됩니다. 하지만 몸이 허약한 상태라 그만 일찍 죽고 맙니다. 이렇게 하여 13세의 시황제가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조희(조태후)는 남편을 잃었지만 여불위라는 과거 남편이 있지요. 둘이서 몰래몰래 각별한 사이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발각될까 두려워 노애라는 사람을 환관으로 위장시켜 조태후 처소로 보냅니다. 조태후와 노애는 곧 열애하는 사이가 됩니다. 조태후는 걱정이 됩니다. 자신의 아들 진시황이 알게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핑계를 대며 거처를 수도 함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깁니다. 그곳에서 노애는 조태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이게 뭔 조화인지 모르겠지만 2명의 아들까지 낳게 됩니다. 

하지만 비밀은 없는 법. 진시황이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노애는 반란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진시황의 군사들에게 노애는 죽음을 당하고, 어머니 조씨 또한 감금합니다. 2명의 아들 또한 죽음을 면치 못했지요. 그리고 이게 모두 여불위가 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여불위까지 자결하게 합니다.(여불위의 아들이 진시황인지 모르겠으나 여불위열전의 기록에는 나와있다. 하지만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

이게 사실이라면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조태후는 여불위의 아기를 가진 상태에서 태자와 혼인하고, 태자가 죽자 여불위와 다시 만남을 가지고, 노애라는 사람과 아이 2명이나 낳고, 여불위는 결국 자신의 아들에게 죽음을 당하고...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진시황의 무덤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었습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삽질과 곡괭이질을 하던 농부의 농기구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것을 살펴보니 인간을 본떠 만든 조형물이었지요. 그때 마침 기자가 그것을 알고 많은 유물들이 나왔다고 기사를 썼습니다.

이 상황을 알게 된 모택동은 고고학자들을 급파하였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본격적인 조사를 해보니 그곳은 바로 진시황의 무덤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유교적 이념을 없애기 위해 분서갱유를 실시하여 많은 서책과 유학자들을 산채로 땅에 묻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그는 위대한 황제로도 유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법을 만들고, 도량형을 통일하였으며, 물자 이동을 원할하게 하기 위해 대운하도 만들었습니다. 또 건축에도 열의를 보여 인공위성으로 보면 보인다는 만리장성을 축조하였습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었지만 영생을 바라는 마음에서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것 저것 먹다가 불로장생약인 줄 알고 먹었던 것이 수은이었다. 결국 인체에 치명적인 수은으로 병약해 져 전국 순행 도중 죽게 됩니다.(순행 도중 이사, 조고, 호해 등이 죽음을 숨기고 원래 황태자 부소와 몽염에게 자결을 강요하고....)

생전에 자신의 묘가 도굴될 까 염려한 그는 철저한 보안 속에 무덤을 만들고 가묘까지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무덤에 관련된 기록도 없애고 무덤을 만드는데 관여한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의 무덤은 큰 손상없이 발굴되었던 것입니다. 도기 모양의 인형들이 진시황을 호위하고 있는 모습이 흡사 실제 살아있는 병사들처럼 느껴질 정도로 위압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입장료가 중국 물가에 비해 많이 비싼 것이 흠입니다. 영국 박물관처럼 무료가 아니더라도 조금 싸게 받아도 될 듯한데....

무덤의 규모 및 실물보다 더 큰 도기 인형들 정말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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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속에 아름답던 보라카이 해변>

하얀 물결 넘치는 푸른 바다와 백사장이 아름다운 천혜의 아름다운 해변인 보라카이가 결국 폐쇄되는 수순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얼마나 더러우면 시궁창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두테르테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었지요. 환경 보호에 대한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마구잡이 난개발을 하고 하수처리를 아예 하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다로 흘려 보냈으니 당연히 환경오염이 심해질 수 밖에 없었겠지요.

지방 정부는 일부 리조트의 허가를 취소하고 영업을 중단하게 하였는데, 이에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필리핀 정부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한다면 한다의 대통령인 두테르테는 보라카이 섬에 있는 불법 구조물을 폭파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해병대까지 투입하는 강수를 쓰겠다며 압박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 여행사에서는 이미 보라카이 여행을 예약한 사람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으며 지금으로서는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고 합니다. 일단 필리핀 정부의 공식 발표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고 하며 앞으로의 사태에 예의 주시하고 있습니다.

보라카이를 중국인 다음으로 많이 찾는 우리나라 사람들. 여기 저기서 휴양을 하는 한국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요. 올 여름 보라카이 해변을 거닐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서 빨리 정상화를...>

조그만 마트 디몰에서 맥주를 사서 호텔이나 해변가에서 마시며 휴양하던 일이 생각납니다. 또 툭툭이를 타고 섬 이곳 저곳을 다니며 구경했던 일, 호핑 투어 하던 일, 마시지 받으며 피로를 풀던 모든 것들이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너무 좋은 추억이 있기에 집사람과 맥주를 마시며 보라카이는 다시 한번 꼭 와야 할 여행지라며 이야기 했었습니다.

어서 빨리 아름다운 해변의 모습을 되찾아 한국 사람들이 즐겁고 저렴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3년 안에는 다시 방문하여 호핑투어 다시 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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