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축구 결승전, 야구 결승전, 배구 결승전 모두 끝났습니다.

축구와 야구는 우승, 배구는 준우승...

규정 상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한 선수는 4주간 군사 훈련 후 군면제 혜택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손흥민 선수가 과연 군면제를 받을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말레이시아와 2:1로 지면서 손흥민이 군대를 가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는데,

무사히 이란과 우즈베키스칸, 베트남, 일본을 연파하고 

자랑스럽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런데 축구가 은메달, 야구가 금메달이라면 정말 많은 논란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시안 컵, 월트컵, 국가 대항전 축구 경기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열심히 뛰며 국위를 선양했던

손흥민 선수는 꼼짝없이 약 21개월을 사회복무요원으로 썩어야 했습니다.

가장 전성기 선수를 퇴물로 만들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야구에서 선발때부터 논란이 되었고, 아시안 게임에서 활약을 하지 못했던

오OO, 박OO 등의 선수는 단 한번의 출전으로 군대를 면제받는 이상한 병역특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건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저는 이런 방법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1. 해외에서 연봉이 일정액 이상이면 군대 면제

 -그런데 이것도 편법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연봉 50억 이상 면제라고 했을 시 선수의 기량은 연봉 30억 이라고 가정했을 때 구단에서 이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가짜 계약으로 연봉 50억을 맺고 나머지 20억을 나중에 공제하는 방법을 쓸 수 있으니 조금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2. 일정 시간 국가 대항전에 참가하여 성적을 거두는 경우 군대 면제

 -이것도 감독의 학연, 지연에 따라 국가 대표 차출하여 군대 면제 혜택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3. 각종 세계 대회에 참가하여 점수제로 하여 군대 면제

 -이것이 그나마 가장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탁구를 잘 쳐도, 아무리 달리기를 잘 해도 아시안 게임에서 중국과 일본을 꺾고 금메달을 따기 어렵습니다. 점수제로 하여 차곡차곡 포인트를 쌓아 일정 점수 이상이면 군대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쉽게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과 아무리 해도 메달을 따기 어려운 종목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손질도 필요할 것입니다.

4. 요즘 방탄소년단은 왜 군대 면제가 안되는가? 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정말 동감입니다. 오로지 클래식만을 한정하여 국제 콩쿨대회에서 입상한 사람만 군면제 혜택 주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이곡이 유행했을 시 다른 나라를 여행했는데 여기 저기서 말춤 추며 노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강남스타일 한곡이 우리나라를 외국에 얼마나 알렸습니까? 싸이 특유의 능글스러움과 예술성이 엄청난 국위 선양이 되었었지요. 방탄 소년단도 그 어렵다는 빌보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이건 어마어마한 국위 선양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탄소년단과 같은 대중음악인도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여 군면제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무청 관계자들이 어련히 잘 하겠지만 국민들이 대부분 이해하는 선에서 병역 특례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글을 써 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흥민 선수가 큰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선수 차출에 협조해 준

토트넘 구단에게도 감사하다는 말을 올립니다. 

결과적으로 토트넘과 손흥민 모두 윈윈하는 아시안게임 축구가 되었네요.




우리나라의 김연아 선수 등 동양계 피겨 선수들이

인종 차별 없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것은

수리아 보날리 라는 흑인 피겨 선수의 노력도 한 몫 했을 것 같습니다.

수리아 보날리는 뛰어난 운동 신경으로 우아한 몸동작, 뛰어난 점프력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좋은 연기를 펼쳐도 흑인이라는 이유때문인지 몰라도 늘 2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1위는 늘 백인 선수가 차지했지요.

그런데 일본 대회는 그동안 우승했던 선수들이 참여하지 않아 우승 가망성이 매우 높은 대회였습니다.

그리고 그 대회에 참가하여 혼신의 연기를 다했습니다.

누가 봐도 1등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역시 2등이었습니다. 

1등한 사람은 개최국 일본선수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나가노 동계올림픽.

이 대회에서 그는 보란듯이 백플립(뒤로 돌기)을 시도하여 보기 좋게 성공합니다.

이 기술은 위험하여 금지된 기술이었고, 남자 선수들도 해내기 어려운 기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감점 당할 것을 각오하고 이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그래서 경기 결과는 10위를 하였습니다.

기자들이 물어봤습니다. 도대체 왜 그 기술을 사용했느냐고....

"저는 이 기술을 심판들 보라고 한 것은 아닙니다. 이 대회가 저의 마지막 올림픽 대회이니 저를 그동안 응원해 준 팬들을 위한 기술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인터뷰...

그 이후부터 늘 백인이 1등인 여자 피겨가 동양인들도 1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자 피겨에서 이제는 인종 차별이 아닌 실력으로 점수를 매긴 것이지요.

인종 차별로 너무 힘들었을 것 같은 수리아 보날리 선수. 

역사상 위대한 피겨 선수 중 한명이었습니다.

스페인 발렌시아 이강인 선수.

개인적으로 아시안게임에 축구 대표선수로 뛰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골이 터지나? 하고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1군 무대에서 데뷔골 작렬시켰습니다.

상대는 전통 강호 레버쿠젠(독일)

백넘버 34번을 달고

후반 33분쯤 교체 투입된 이강인 선수는 후반 42분쯤 후벤 베주 선수의 크로스를 문전에서 

헤딩골을 만들어 냈습니다.


골 뿐만 아니라 몸 움직임도 경쾌하여 발렌시아의 중요 선수라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이날 이강인의 골을 포함하여 레버쿠젠을 3대0으로 제압하였습니다.

이강인 선수는 2001년생으로 만으로 17세 입니다.

일찌감치 2011년 스페인 발렌시아 유소년팀에 입단하여 발군의 기량을 뽐내자, 

스페인 명문 레알마드리드와 영국 맨체스터시티 등에서 영입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발렌시아 구단은 2022년까지 이강인과 계약하며 8000만 유로의 바이아웃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즉 이강인을 데리고 가고 싶은 구단은 최소 8000만 유로 이상을 내고 데려가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8000만 유로면 얼마냐? 한국돈으로 대충 따져보니 약 1060억원 정도나 되는군요.

그만큼 발렌시아 구단이 이강인을 아낀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발군의 기량으로 득점도 많이 하는 이강인 선수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강인 파이팅!!!


 제가 어렸을 때 동네 꼬마들 모두 모여 텔레비전에서 김일 레슬링 시합을 보며 박치기로 상대를 쓰러뜨릴 때 뭔지 모를 쾌감이 있었습니다. 레슬링 중계가 끝난 후에는 인근 학교의 잔디밭에 가서 레슬링 놀이를 하며 즐겁게 놀았던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런데 그 김일 선수를 가르친 사람이 바로 역도산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도산이란 인물은 누구일까? 궁금해졌습니다.

역도산

1. 본명 - 김신락

2. 태어난 해와 태어난 곳 - 1924년 함경남도 홍원군

3. 요코즈나를 꿈꾸며 일본 스모계에 뛰어들었으나, 차별과 냉대로 스모계를 떠난 후 프로레슬링에 뛰어들어 하와이에서 1년여동안 훈련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역도산은 타고난 씨름꾼으로 힘이 장사였고, 레슬링 기술도 상당히 뛰어났습니다. 때는 1954년 역도산은 미국인 프로레슬러인 샤프형제와의 시합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미국의 원자탄 투하로 무조건 항복하고 패전의 시름이 있었던 시기였으므로 미국인과의 시합을 일본인들은 매우 관심있어 하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한일전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런데 역도산이 가라테 춉 등의 화려한 기술로 샤프 형제를 제압하였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을 패망시킨 미국 선수를 쓰러뜨리자 일본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습니다. 이 시합으로 역도산은 일본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즉 역도산은 태평양 전쟁의 원수인 미국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라고 할까요?

 함경남도 출신이므로 북한에서는 열사의 칭호를 얻게 되었고, 레슬링과 사업으로 큰 돈을 벌게 된 역도산은 1963년 방한하여 조국을 돕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해에 그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일각에서는 역도산은 미국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이므로 한국인이 아닌 일본인이 되어야 했는데, 방한하여 자신은 한국인이다 라고 말해 죽음을 당하지 않았나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1963년 도쿄 아카사카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야쿠자 깡패와 시비가 붙어 칼에 찔립니다. 하지만 상처가 그리 깊지 않아 수술이 잘 되었으나, 복막염으로 재수술 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납니다.

 역도산의 제자에는 김일, 안토니오 이노키, 자이언트 바바 등 기라성 같은 레슬러가 있었습니다. 그중 안토니오 이노키는 김일과도 경기를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도 변신한 이노키가 말하길 칼에 찔린 후 수술한 곳이 산부인과이므로 외과적 수술이 미흡했다고 하고, 수술 뒤 가스가 몸밖으로 배출되어야 하는데 그 전에 누군가 음료를 마시게 하여 그것이 결정적인 사인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노키가 김일과 시합을 하며 재미있는 표정을 지으며 경기하는 모습을 유투브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시합에서 이노키를 나쁜 선수라고 생각하며 김일 선수가 혼내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던 어렸을 때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한국인이었던 역도산을 존경하며 북한에 32번이나 다녀오고, 역도산 묘소도 주기적으로 찾는다고 하니 어렸을 때 이노키를 싫어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