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오늘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탐방하기로 하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요기를 하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제가 묵고 있던 숙소는 워터루 역 근처의 아파트로 템즈강을 건너서 약 30분정도 걸어가면 나오더라구요.
구글 지도를 켜고 천천히 영국 런던의 경관을 구경하며 걸어갔습니다. 걸어가는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 조깅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조깅하는 사람들 대부분 운동복을 바르게 갖춰 입고 달리기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이 육상 종목에서 그래도 우리나라보다는 훨씬 강국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템즈강의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지나가다 보니 공사중인 빅벤도 보이고 공원에는 처칠 등 여러 위인들의 동상들이 보였습니다. 동상들이 있는 조그만 공원 바로 앞에 드디어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런던에 위치한 성공회 성당으로 역대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이 열리는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원래는 카톨릭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종교 개혁기를 거쳐 성공회 성당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장례식과 그 아들인 윌리엄 왕자의 결혼식이 열린 장소로도 유명하지요.
또 우리와는 맞지 않게 시신을 성당 내부에 안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당 곳곳에 여러 영국 왕들과 왕비, 과학자 등의 무덤이 있습니다. 시신을 자꾸 안치하다보니 실내가 조금 좁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상적인 이야기 중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1세의 무덤은 전해오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피의 메리1세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메리 1세입니다.)
잉글랜드 여왕이었던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1세는 왕위 계승과 관련하여 서로 경계하는 사이였습니다. 메리 1세는 결혼도 순탄하지 않았으며 급기야 반란군에게까지 패하여 폐위당하고 잉글랜드 엘리자베스 1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요. 하지만 경계의 눈초리를 하고 있던 엘리자베스 1세는 메리 1세를 칼라일 성에 감금하고 반역죄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그리고 영국 중부에 있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엘리자베스 1세가 자식이 없는 상태로 죽자 메리의 아들 제임스1세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통합하는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피터버러 성당에 묻혀 있던 어머니 메리 1세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장하여 엘리자베스 1세보다 훨씬 크고 아름답게 대리석으로 무덤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이 사원의 아쉬운 점은 실내에서 사진을 마음껏 찍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사원의 정문 바로 앞에서 우버를 부르면 10여분 내로 도착하니 참고하세요.

1592414. 임진왜란 발발로 조선땅은 아비규환으로 현장으로 변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을 정벌하러 갈 테니 조선에게 길을 빌려달라고 하며 우리나라를 침입하였다. 생전 처음보는 무기인 조총으로 생전 처음보는 무기를 들고 나타난 왜군부대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조선을 손쉽게 유린하였다.

그 왜군부대 중 조총부대를 이끌던 사야가

그는 조선의 문화를 동경하여 처음부터 투항을 결심하였다고 그의 저서 모하당술회록에 적어 놓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그의 아내와 딸을 볼모로 조선에 출병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위협하여 어쩔 수 없이 출병한 사야가.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이런 불합리하고 의롭지 못한 전쟁을 찬성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선진 문화의 조선을 동경하였으며 기회를 틈타 조선에 귀화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자신의 병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조선인 모녀를 목격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아내와 딸을 생각하게 된다.

부산진을 함락한 다음 날 사야가는 조선군에게 귀화하고 싶다는 편지를 쓴다. 이렇게 사야가는 귀화하여 김충선이라는 새 이름을 하사받는다. 본은 김해김씨, 이름은 충성하고 어진마음이라는 충선을 하사 받게 된다.

조선에서는 이렇게 귀화한 병사들을 항복한 왜군이라고 하여 항왜라고 불렀다. 이런 항왜를 활용하여 일본의 사정을 파악하고 조총 등 무기 관련 기술을 습득하였다.

김충선이 된 사야가도 조선군에게 조총 사용법 등을 조선군에게 알려주어 조선 조총부대를 만들게 된다. 왜군들에게서 노획한 조총으로 훈련한 김충선의 조선군 조총부대는 울산성 전투에 참전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우게 된다.

김충선은 그 후 1624년 이괄이 난, 1636년 병자호란에 이르기까지 화약제조와 조총기술 등을 전수하면서 조선의 명장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경상도 달성군에서 7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사야가는 조선이 꾸며낸 조작극이라고 주장한다하지만 1970년 작가 시바 료타로의 연구로 사야가는 김충선이라는 것을 밝혀 낸다그리고 사야가를 천하의 매국노이며 증오의 대상이라고 하였다일본에서도 아예 사라져버린 사야가의 가문이지만 한국과 일본의 후손들은 한국과 일본의 평화를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하여 해마다 달성군에 있는 달성한일우호관에는 많은 일본인들이 방문하여 김충선 장군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모회당 술회록> - 김충선의 문집

-김충선 장군의 조선군 부임당시 이미 조선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있었고 그나마 들고 있는 창과 검의 훈련법마저 미숙한 상태였다.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킨 왜군에 환멸을 느낀다.

 

달성한일우호관 http://www.dskjfriend.kr/main

 -녹동서원(숭의당): 대구 달성, 모하당 김충선 장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

 -녹동사: 모하당 김충선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

  -김충선 장군 묘소: 녹동서원 뒷산에 있습니다.

<앙리무어의 엄청난 발견>

1860

프랑스 식물학자, 박물학자인 앙리무어가 캄보디아를 찾아옵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온 이곳에는 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동식물들이 있어 앙리무어는 연구의 성과를 낼 수 있어  큰 기대를 하고 옵니다. 그렇게 찾아온 그가 어마어마한 발견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밀림속에 숨겨져 있던 도시를 발견한 것입니다. 그 도시가 현재 캄보디아의 중요 관광자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발견을 했는지 알아볼까요?

앙리무어는 동식물연구를 위해 캄보디아의 현지인을 고용하여 밀림탐사를 떠납니다. 밀림 속에서 다양한 동식물을 관찰하며 탐험하던 그는 연신 감탄을 쏟아냅니다. 탐험을 하다보니 밀림 속으로 조금씩 조금씩 들어가게 됩니다. 어느 순간 캄보디아 현지인들이 더이상 밀림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거부합니다.

"왜 더이상 들어가지 않으려 합니까?" 

앙리무어가 이렇게 물어보자, 현지인들은 

"여기는 수백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머리가 일곱개인 뱀을 신으로 모시던 때 한 왕족이 밀림 속에 화려하고 거대한 도시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신을 잘 모셨습니다. 그런데 왕족들이 반역을 모의해서 신에게 도전을 합니다. 이에 엄청나게 화가 난 신은 큰 저주를 내립니다. 그 저주 때문에 도시는 밀림으로 뒤덮여져 도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습니다. 사람들과 신에게 도전한 왕족들은 그후 유령이 되어 밀림속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그 유령이 이 밀림속에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실제로 이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다가 죽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밀림 속을 유령도시라고 합니다. 유령이 나타나고 뱀신에게 홀리면 정신이 나가고 죽게 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못들어가니 집에 가겠습니다."

"돈을 더 줄테니 함께 더 들어가서 연구해 봅시다." 

앙리무어는 유령도시니 뱀신이니 이런것이 허무맹랑한 소리라 여기고 더 깊은 밀림 속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더 갔을까? 뭔가 이상한 기운이 드는 것 같습니다. 

"으악!!!"

 현지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갑니다. 뭔일인가 하고 앙리무어는 앞을 바라봅니다. 그곳에는 뱀의 모양을 그려놓은 조각들이 보입니다. 이걸 보고 현지인들은 뱀신이 나타난 줄 알고 도망가는 것입니다.

"그럼, 그렇지. 뱀신이 어디있어? 유령도시는 또 뭐야?"

이렇게 생각하며 앙리무어는 더 깊이 더 깊은 밀림 속으로 탐험을 합니다. 탐험에 탐험을 한 그는 드디어 어떤 유령같은 건물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는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저게 뭔가? 저게 정녕 유령도시인가? 어떻게 이런 밀림 속에 저런 건물들이 있을까?"

놀라고 흥분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좀더 가까이 가서 연구를 합니다. 그림도 그리고 황홀한 건축물에 넋을 잃기도 하고...... 그렇게 앙리무어는 밀림 속에서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무사히 밀림 속을 나와 마을로 와서 그의 조국 프랑스로 돌아갑니다. 그때부터 앙리무어는 이상한 이야기를 중얼거립니다. 캄보디아 밀림 속에는 어마어마한 도시가 있다는 둥 그리스, 로마 건축물과 버금가는 것이 밀림 속에 있다는 둥, 빨리 다시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다는 둥 이렇게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동양의 작은 나라이며 후진국, 그것도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밀림 속에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습니까? 사람들은 앙리무어가 드디어 뱀신에 홀려 미친 것이 아닌가? 유령도시에서 유령의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무어가 아무리 밀림 속에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혹시 그런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면 벌써 발견이 되었을 것 아니냐 하며 앙리무어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다가 1년 정도 지난 후 앙리는 불행하게도 말라리아에 걸려 사망하게 됩니다. '멀쩡했던 사람이 밀림 속 유령도시에 갔다오더니 진짜 유령에 홀려 죽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사람들은 생각하였습니다.

앙리가 젊은 나이에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후 그의 부인과 동생은 앙리무어가 캄보디아의 밀림 속에서 보고 그렸던 그림과 글을 모아 <캄보디아 탐험>이란 책을 출간합니다. 당연히 그 책은 사람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합니다. 그러던 1866년 프랑스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히 앙리가 쓴 책을 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해군 장교인 루이 들라포르트였습니다.

책 내용 중 그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 문장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다음 문장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캄보디아 밀림 속에 솔로몬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가 세운 것 같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루이 들라포르트는 앙리무어의 책을 따라 밀림을 탐험하여 거대한 도시와 위대한 건축물 앙코르와트를 발견하게 됩니다.


<수리아바르만 2세>

크메르제국의 제18대 왕으로 앙코르와트의 건설자인 수리아바르만 2세. 그는 12세기 초 현재 태국 롭부리 지방에서 왕족으로 태어났으나 왕이 되기 희박했던 젊은이였다. 당시 왕위 계승 결정권은 브라만 계급의 원로회의에서 결정하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는 매우 용감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이런 젊은이를 눈여겨 본 사람이 바로 왕위 계승 결정권을 갖고 있던 디바카라판티타(브라만 승려)였다. 이 사람은 브라만 계급에서도 권위있던 사람이었다.

1113년 당시 왕은 다닌드라바르만 1세였다. 수리아바르만 2세의 백부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 재위 당시 크메르제국은 몹시 혼란한 사회였다. 다닌드라바르만 1세는 본디 승려였으며 시문을 좋아하고 왕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를 노년에 억지로 추대하여 왕이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당시 혼란한 사회를 수습할 능력이 없었다.

결국 왕위 계승을 결정했던 브라만들은 당시 무능한 다닌드라바르만을 몰아내고자 야망넘치는 수리아바르만 2세를 선택한다.

그들은 쿠테타를 통해 수리아바르만 2세를 왕위를 올린다. 이때 그의 나이가 17세이다.

여세를 몰아 다닌드라 가문을 몰아내고 1119년 마침내 크메르 제국의 통일 군주가 된다.


<앙코르와트의 건설>

크메르 제국은 오랫동안 오늘날 시엠립에 해당하는 앙코르를 도읍지로 하여 발전해 왔습니다. 하지만 크메르 제국의 성지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곳은 바로 시엠립 북동쪽으로 약 40KM정도 떨어진 프놈 쿨렌산맥의 쿨렌산입니다. 이 곳은 802년 크메르 제국이 앙코르 시대를 연 최초의 왕도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왕위에 오른 군주는 이곳을 순례하며 선대왕의 권력을 승계했다는 정통성을 인정받으려 했습니다.

또 쿨렌 산은 종교적으로도 신성시됩니다. 이 당시 종교는 인도에서 들어온 힌두교였고 크메르 왕들은 힌두 최고의 신인 시바를 신봉했습니다. 그리하여 쿨렌산 크발스피앙에는 천여 개의 물속 링가가 있습니다. 링가는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는 요니를 받침대로 해서 그 위에 원통형의 조각을 올려 고정시켰습니다. 링가는 힌두교 시바신의 성기를 상징하고, 사람들은 링가를 생명의 근원이라 믿었다. 그러니 상류에 위치한 쿨렌산 크발스피앙에 링가를 만들어 생명의 근원과 신의 축복이 물길을 타고 앙코르까지 흘러오도록 한 것입니다.

크메르 제국의 왕들은 재임기에 1~2개의 사원을 건설하였습니다. 시바신의 권위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수리아바르만 2세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는 종교를 개혁하고 국정을 쇄신하고자 또 다른 힌두교의 신 비슈누를 선택합니다. 그리고 왕궁 근처에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사원을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건물이 바로 앙코르와트입니다.

앙코르와트의 석재들은 어디에서 가져온 것일까요? 바로 40km떨어진 성지인 쿨렌 산에서 가져왔습니다.

코끼리와 인력으로 수많은 석재들을 옮긴 후 조각하여 쌓은 앙코르와트. 세계 제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앙코르와트

동서로 약 1500미터남북으로 약 1300m에 달하는 땅위에 7톤짜리 기둥이 1800개, 돌로 된 방이 260개가 있는 정말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건축기술로 지었습니다 

12세기 동남아시아의 작은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건축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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